현대 유대인들과 관련된 사건으로 2차 세계대전 때 있었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 히틀러의 나치 정권하에 수백만명의 유대인들이 조직적으로 학살되었던 사건입니다. 홀로코스트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번제(제물을 불에 태워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입니다)를 의미하는 말에서 유래하였는데요 유럽 내 약 900만 명의 유대인 중 2/3인 600만 명이 학살되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독일을 포함한 전 유럽 대륙에서의 반유대 감정에서 비롯되었는데요 먼저 기독교가 유럽 대륙에 퍼지면서 예수와 사도들을 죽인 것에 대한 반감과 다른 민족과 융화되지 않는 그들만의 선민사상과 유대인 자본가와 은행가에 대한 세계 대공황에 대한 음모론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인 요소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홀로코스트는 나치가 선동하였지만 점령지에 있는 사람들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유대인들을 고발하기도 하였는데요 독일과 점령지 전역의 4만여 개 시설에 구금되면서 이러한 학살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학살극은 단지 인종적인 반감뿐만 아니라 같은 독일인이다 하더라도 사상이 맞지 않는 사람들까지 함께 죽였는데요 유대인을 비롯해서 함께 죽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이러한 홀로코스트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잊히고 있기도 합니다.
이제 TMI는 이만하고 이스라엘 유물을 계속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벽장 왼쪽으로 조금더 가보면 있는 지금 보는 조각상은 라기스에서 발견된 것인데요 여기 있는 유물은 종종 아스다롯 혹은 아스타르테 여신의 상징물인데요 이런 유형의 조각상들이 이스라엘인들이 터를 잡고 살던 고대 가나안 사람들과 계속 교류가 있었으며 존중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물입니다. 이 모든 조각상이 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몇몇은 도자기로 만든 장난감과 젖병으로도 추정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철기시대에 상당히 인기가 있던 것들로 보입니다. 특히 신체의 성적인 특정 부위를 부각해서 묘사한 여자의 나체상들이 많은데요 이러한 것들을 임신과 출산에 도움을 주는 부적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실제 아스타르테(아스다롯) 여신 숭배는 음란한 난교 의식이 숭배의 주요 부분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숭배 의식이 사회적으로 퇴폐했고 더러운 수준까지 타락한 상태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벽장 왼쪽으로 계속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보이는 도자기 파편은 팔레스타인(블레셋) 도자기 파편입니다. 이 도자기는 이스라엘의 도자기와는 확실히 다른데요 블레셋 바이크롬 도자기(Philistine Bichrome ware)라 불리는 도자기입니다. 이 도자기는 고대 가나안의 철기 시대(기원전 1,200-1,000년경) 동안 블레셋 사람들의 거주지에서 생산된 것을 말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과거부터 유명했던 미케네 도자기 제작자들의 후손답게 기하학적인 정교한 무늬로 만들어지는데요 새나 물고기 혹은 범선과 같은 패턴으로 흰색과 빨간색, 검은색 페인트(두 가지 색상이라는 말인 바이크롬이 이렇게 유래하였습니다) 패턴을 사용하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크레타에서 이주해서 이스라엘 남주 해안에 정착한 이민자들이었는데요 이들은 이스라엘과 내내 관계가 좋지 않았던 원수 사이가 됩니다. 도자기 모양은 미케네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키프로스의 영향도 받았기에 크고 좁은 목을 사용하기도 하였는데요 이 도자기는 키프로스 바이크롬 도자기(Cypriot Bichrome ware)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검색해 보신다면 두 도자기의 유사성을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왼쪽에 보면 큰 얼굴이 묘사되어 있는 항아리가 보이는데요 이것은 블레셋 사람들의 관 뚜껑입니다. 이 관 뚜껑의 모습은 이집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볼 수 있는데요 처음에는 블레셋을 포함한 가나안에 영향을 끼쳤던 이집트 관리들을 무덤으로 만들어지다가 나중에는 블레셋 문화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얼굴 뚜껑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게 되는데요 얼굴 윤곽이 명확하게 표시된 자연주의 스타일(Naturalistic Coffin Lids)과 윤곽선이 명확히 표시되지 않는 그로테스크 스타일(Grotesque Coffin Lids)로 나뉘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보는 관 뚜껑은 그로테스크 스타일로 만들어져서 눈, 코, 입, 수염 등만 묘사한 것이 마치 캐리커쳐같은 느낌을 주게 됩니다. 이러한 관의 유형을 통해서 블레셋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의 출신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실효 지배가 오랜 기간 이루어진 라기스에서는 이러한 관이 출토가 되었는데요 고대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벽장을 따라 쭉 가다보면 벽에 걸려있는 점토판들이 보이는데요 아마르나 문서(Amarna letters)라 불리는 유물입니다. 이 점토판은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270킬로미터 떨어진 고대 이집트의 도시였던 텔엘아마르나에서 발견된 외교 문서인데요 이 고대 이집트어가 아닌 아카드어와 여러 기타 가나안 문자로 적힌 30년간의 기록이 담긴 문서입니다. 379점의 서판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의 여러 도시 왕국을 다스리는 이집트 속국의 방백들이 파라오(아멘호테프 3세와 아크나톤)에게 보낸 서한들로 되어 있는데요 그 가운데는 우루살림(예루살렘)의 총독이 보낸 서한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에는 ‘하비루’(아피루)의 침입과 약탈에 불만을 토로하는 애용이 담겨 있어서 일부 학자들은 ‘하비루’를 히브리인 즉 이스라엘 사람과 동일시하려 하지만 이 문서에서는 그러한 점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없고 단순한 침입자들로 설명하는데 그들이 도시들 간에 경쟁을 벌이는 특정한 가나안 통치자들과 동맹을 맺었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중 여섯 통의 편지는 예루살렘의 통치자였던 압디헤바가 보낸 것이었는데 당시 그 도시가 작은 왕국으로서 상당히 중요한 도시로 존재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벽장을 따라 계속 이동하다보면 중간에 다음과 같은 유물이 보이는데요 고대 도시인 예리코에서 온 것들입니다. 이 조각들은 무덤의 바닥에 흩어져 있던 것을 발견한 것인데요 의자나 탁자와 같은 가구를 장식하는데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기원전 1750-1700년대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리코를 조금 소개하자면 예리코에 대한 탐사 발굴이 세 차례(1907-1909년, 1929-1936년, 1952-1958년) 진행되면서 매번 다른 해석이 나왔습니다. 1929년에서 1936년 사이에 텔에스술탄을 탐사하던 영국의 존 가스탱 교수는 유적에 세워진 도시들 가운데 심한 화재를 겪고 무너진 도시 성벽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가 여호수아 시대에 멸망한 예리코로 생각을 했지만 그 이후로도 예리코와 관련된 여러 다른 의견들이 제시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 도시는 여러 차례 끔찍한 멸망을 당했고 여러 세기에 걸쳐 사람이 거주하지 않은 채로 있었던 것은 전반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성서에는 예리코라는 도시가 하나가 더 존재하는 것처럼 알려주는데요(마태복음 20:29; 마가복음 10:46; 누가복음 18:35) 최근 고고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고대 예리코에서 1.6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는 로마 제국 당시에 재건된 예리코가 있었다는 것도 확인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가면 보이는 이 유물은 고대 이스라엘의 그릇과 오일 램프를 보여주는데요 오일 램프는 다음 편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그릇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점토로 만든 테라코타 그릇은 도공이 물레로 돌려서 매끄러운 표면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고대 도공들의 실력이 상당히 좋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초기의 물레는 일반적으로 돌로 만들었는데요 수직 축을 중심으로 둔 납작한 원반을 수평으로 회전해서 돌리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토기장이들이 만드는 방식과 비슷한 방식으로 제작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도공들은 혼자 일할 때도 있지만 주로 견습공을 두고서 일을 했는데요 그릇을 얼마쯤 햇볕에 말리고 나서 다시 물레 위에 올려놓고, 돌멩이나 조개껍데기 혹은 어떠한 도구를 사용해서 그릇을 매끄럽게 하거나 광을 내기도 하고 표면에 무늬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도공은 큰 질항아리부터 오른쪽에 있는 등전과 그밖에 화덕, 장난감도 만들었고 대접, 잔, 병 등 다양한 것을 만들었으며 생산지를 표시하는 인장을 찍거나 손잡이가 있는 경우에는 손잡이에 고유의 상표도 찍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메디아-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이스라엘로 이어지는 다양한 유물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는데요 이제 마지막 4부를 통해 이스라엘편을 포함한 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편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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