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정보/- 장소

방구석 투어 / 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 이스라엘편 4부

by 톡톡오늘 2022. 1. 18.

전 세계에서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민족이 있다면 아마도 한국인과 더불어 유대인도 그러한데요 두 민족의 교육 방식에는 공통점이 있고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점이라고 한다면 조기 교육을 한다는 것과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한다는 것이 같은 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육 방식은 아니지만 성격적으로도 직설적이고 성격이 급한 것도 비슷한데요 결정이 빨리 이루어져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도 비슷하네요. 이스라엘에서 운전하다 보면 신호가 바뀌었을 때 조금만 지체해도 뒤에서 빨리 출발하라는 소리가 납니다. 이렇듯 민족적으로 비슷한 점도 많지만 교육의 방식은 큰 차이가 있는데요 한국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IQ(한국인은 106으로 세계 2위)가 유대인(IQ 95로 세계 26위)들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한국인은 암기식으로 교육을 한다면 유대인들은 하브루타(질문식 대화법)로 공부를 하는데요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계속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고 호기심과 상상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이혼율과 범죄율도 세계 최저 수준인데요 명문대에 입학해서 돈을 잘 버는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가 아닌 인생 전체를 가르치는 평생 교육 시스템으로 교육의 목적이 다르기도 합니다. 또한 유아기 때부터 책을 좋아하게끔 하기 위해 책에 꿀을 발라놓아서 아이들이 익숙해지게 한다는데요 유대인들은 왕보다 학자들을 더 존경하고 우대한다는 사실을 봐도 그러하네요.

이제 유대인 TMI는 이쯤 하고 이스라엘의 나머지 유물들도 마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반대편 벽장 왼쪽에 보면 이렇게 접시를 찌그러트려 놓은 듯한 것이 보이는데요 이것은 초창기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사용하던 오일 램프입니다. 처음에 고고학자들이 이러한 형태의 접시를 발견했을 때 그을림 자국이 있는 것을 보고 램프용 그릇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접시를 만들 때는 점토 상황일 때 가장자리를 이처럼 꼬집어서 주둥이를 만들어 놓았는데요 이러한 주둥이가 얼마나 있는지에 따라 빛을 많이 할지 적게 할지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보는 방향에서 주둥이 쪽인 앞쪽으로 아마 심지를 통해 빛을 밝힐 수 있었겠네요. 고대에는 이러한 램프가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부분이었고 지금처럼 석유램프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유물을 통해 고대의 일상생활을 간접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데요 주로 원료로 사용하던 올리브유는 기근이 들 때는 빛을 적게 사용하거나 다른 기름으로 대체하여 사용하기도 하였고 지금 보는 것처럼 심지가 두 개인 경우는 하나만 사용하는 형태가 될 것 같습니다.

램프 아래칸에 보면 여러 조각상이 있는데요 이 조각은 앞서 2부 마지막에서도 봤던 아스타르테(아스다롯) 여신상입니다. 이 여신은 가나안 사람들의 주신인 바알의 아내이고 전쟁과 다산의 여신이었습니다. 이 조각은 기원전 6세기의 페니키아 지방 인근 무덤에서 발견되었는데요 이집트 스타일의 가발은 감은색으로 칠해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아스타르테(아스다롯) 여신의 숭배자들은 숭배 행위로써 술 취함이나 성적 탐닉 행위를 통해 숭배하면서, 자신들이 갖는 성관계로 인해 바알과 그의 아내가 온전히 깨어나서 부부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놀랍게도 다산을 의미하는 이런 작은 여신상은 벌거벗은 외설적인 모습을 하고 있고 학술지에서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만큼 많이 발견된 지역도 없다고 알려주는데요 집안의 작은 방에 두거나 여자들의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고대 이스라엘과 주변 민족들이 아스타르테 여신 숭배에 얼마나 깊이 빠져있었는지 알려주는 조각으로 보입니다.

이제 오른쪽으로 조금 더 가보면 벽에 상아로 만든 조각들을 관찰하실 수 있는데요 지난 2부에서 보았던 사마리아 조각과 비슷하게 생긴 조각들도 보입니다. 이 조각들의 유사점들을 생각해 볼 때 사마리아가 페니키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조각들은 기원전 9-7세기쯤 만들어진 상아 조각인데요 아시리아의 님루드라는 도시에서 발굴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조각들은 페니키아 인에 의해서 만들어졌는데요 이 작은 조각들은 가구나 병거와 무기, 보석류 등에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 조각들은 아시리아 제국이 멸망하면서 님루드가 약탈되었을 때 궁전 창고와 우물 바닥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상아 중 일부 뒷면에는 페니키아 문자가 새겨져 있었는데요 사용 설명서와 같은 지침들이 있으며 일부는 아시리아 스타일로 일부는 이집트 사람이나 신 혹은 상형 문자가 새겨진 모습도 있습니다. 일부는 이집트 신화의 날개 달린 스핑크스를 비롯해서 여러 상징물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 벽장의 오른쪽 끝에는 조개껍질이 보이는데요 이러한 뿔소라류 조개를 통해서 페니키아인들은 염료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페니키아는 자주색 염색업으로 유명하였는데요 지금 보이는 무렉스 트룬쿨루스(Murex trunculus)와 무렉스 부란다리스(Murex brandaris)와 같은 연체동물에서 얻었습니다. 고대 티레에서는 티레 자주색(티리언 퍼플) 혹은 황제 자주색(로열 퍼플)이라는 자주색 염료나 짙은 심홍색 염로로 유명하였는데요 이 색깔을 얻기 위해 사용된 정확한 비법은 알려져 있진 않지만 이러한 색으로 염색된 긴 옷은 최고가품이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이러한 뿔소라류 조개의 목에는 꽃이라고 불리는 액체를 단 한 방울만 함유하고 있는 작은 선이 있는데요 이 액체는 겉모양과 농도가 크림과 비슷하지만, 공기와 빛에 노출되면서 점차 짙은 자주색이나 붉은 보라색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몇 미터의 천을 염색하기 위해서는 이런 조개가 수천 개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염료의 색조는 그 조개가 지중해 연안의 어느 지역에서 나온 것이냐에 따라 다양하였습니다. 이에 더해서 종종 이중 또는 삼중 염색 과정을 사용했기에 숙련된 페니키아 염색공들의 특수 기술로 인해서 왕족들이나 경제력이 높은 사람들 혹은 귀족들이 갖고 싶어 하는 값비싼 직물로 매우 다양하게 생산되었습니다.

이제 벽장을 몇 개 건너서 쭉 가다 보면 알라크(Alalakh)라는 주제의 벽장이 나오는데요 그 아래 보면 다음과 같은 조각상이 보입니다. 이 조각상은 앞서 봤던 아스타르테(아스다롯) 여신의 남편이기도 한 바알(Baal) 신입니다. 기원전 1400-1200년경에 구리합금으로 만들어진 이 조각상은 페니키아 지역에서 발굴되었는데요 많은 부분 은으로 덮여 있습니다. 바알에 대해 조금 소개하자면 이 조각상이 나온 인근 지역에서 라스샴라 문헌이라 불리는 점토판 자료들이 함께 나왔는데요 라스샴라 문헌에서는 바알이 군왕, 땅의 주, 구름을 탄자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조각상들은 대부분 오른손에 곤봉이나 철퇴를 쥐고 왼손에는 창날이 달린 번갯불을 들고 있는 모습이며 뿔 달린 투구를 쓰고 있는데 이 점은 바알이 다산의 상징인 수소와 관련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바알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최고의 신은 아니었지만 비와 바람과 구름을 다스리는 힘이 있었고 사람뿐 아니라 가축과 농작물까지 불임과 흉작과 죽음으로부터 구해줄 수 있다고 믿었기에 중요한 신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농사나 목축을 하는 가나안 사람들은 소출이 크게 늘어나기를 기원하면서 바알을 위한 난잡한 난교 파티를 하였는데요 이러한 신전에는 바알의 남근상과 여신을 의미하는 목상이 있었으며 동성애와 매춘을 하기 위한 남자와 여자들이 신전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숭배를 위한 난잡한 파티는 주변에 영향을 많이 주었고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러한 숭배 방식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데요 인신공양과 수간 등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용인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행위까지 하게 됩니다. 성서에서도 그러한 행위에 대해 계속해서 중단하도록 경고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제 옆방으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58번 방은 고대 레반트(Ancient Levant)라는 주제의 방인데요 고대 예리코에서 나온 무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가족묘처럼 가지런히 눕혀 있지만 실제로는 유골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그 이유로 도굴꾼이 무덤을 파헤치다가 발각되어서 함께 묻히게 되었다는 설도 있더군요. 발굴자들은 고대 예리코의 집들도 발굴했는데요 저장된 곡식이 많이 있었던 점이 흥미로웠던 것 같습니다. 오랜 기간 포위 공격을 버틸 수 있는 곡식이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도시의 멸망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일반적으로 도시가 함락되면 약탈이 일어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지만 아무런 약탈이 없었던 점도 이례적인 일이긴 한데요 성서 고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예리코 성이 멸망하면서 있었던 여호와(야훼)의 명령으로 곡식을 약탈하지 않았던 점과 연관이 있음을 말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고고학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는데요 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의 유물 가운데 정말 일부만을 소개해 드린 거 같습니다. 실제로는 더 많은 다양한 유물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앞으로 우리 시대에 일어날 미래의 일을 예측해 볼 수 있는 예고편과 같은 것 같습니다. 이제 몇 주간 쉬고 다음에는 독일 베를린의 박물관 섬을 돌아보려 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