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항상 무엇인가 변화를 원하고 어떠한 계기가 삶에서의 전환점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신념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요 어떠한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험을 하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 인해 전환점을 맞기도 하는 거 같습니다. 세계 역사의 흐름도 큰 전환점을 가져오는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는데요 이를테면 카르타고와 로마가 벌였던 2차 포에니 전쟁이나 프랑스 대혁명 혹은 양차 세계대전 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역사학자들이 역사의 전환점으로 꼽는 사건으로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입니다. 이 전쟁이 일어난 이후로 메소포타미아가 끼치는 세계에서의 영향력이 유럽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고대 그리스 유물들을 하나씩 열어보면서 다양한 각도와 시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영국 박물관 정문으로 들어가 Great Court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곳은 이전에 영국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었는데요 1997년 세인트 판크라스오 이전한 후에 중앙 부분은 도서관 열람실을 그대로 두어서 유물 관련 서적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여기의 이름을 사람들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의해서 2000년에 개관되었기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광장(Queen Elizabeth II Great Court)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오디오 가이드를 빌리는 안내소도 있는데요 이 근처에도 그리스 유물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보실 유물은 거대 고대 그리스 사자 상인 지금 보시는 크니도스의 사자(Lion of Knidos)입니다. 1858년 크니도스(Cnidus 혹은 Knidos)라는 고대 그리스 항구 도시 근처에서 영국 고고학자들이 처음 발견했는데요 제작 연도는 기원전 2세기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자 조각상은 아테네 근처의 펜텔리콘 산에서 대리석을 채석하여 만들었는데요 정교하게 만들어진 조각이며 사자의 눈은 아마도 유리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조각상은 고대에 있었던 크니도스 전투를 기념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여기기도 하는데요 조각상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망 좋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선원들의 항해를 돕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지역을 항해하던 모든 배들은 아마도 이 조각상을 보면서 지나다녔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이제 Great Court에서 이집트관이 있는 왼쪽 4번 방을 지나 안쪽으로 쭉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안쪽에는 18번 방이 있는데요 여기는 ‘처녀의 장소’라는 의미를 지닌 파르테논 신전 조각과 건축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신전의 일부가 영국에 있게 된 이유는 1798년 나일강 전투에서 넬슨 제독이 프랑스 함대를 격퇴하는 것을 본 오스만 제국이 영국의 보호를 기대하면서 영국 대사에게 많은 특권을 부여했는데요 1799년 토머스 브루스 엘긴 영국 백작이 그리스 주재 영국 대사로 임명된 뒤로부터 그러한 특권을 이용해 뜯어올 올 수 있는 권한을 넘어설 정도로 최대한의 조각품을 뜯어오면서 지금은 그리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 조각의 절반이 영국박물관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 신전은 페르시아와의 마라톤 전투가 있은 이후에 기원전 432년에 완공된 건축물인데요 페르시아 공격을 막아내고 신께 승리를 고하는 의미로 여타 신전들과 함께 지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18번 방 앞에 있는 조각들 뒤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조각들은 파르테논 신전의 처마에 조각된 부분의 일부인데요 메토프(μετόπη)라고 하는 고전 건축 양식의 일부입니다. 이 신전이 그리스 신에게 헌정하는 의미를 가진 것처럼 여러 신들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 조각에도 세 명의 여신인 헤스티아(Hestia)와 디오네(Dione)와 아프로디테(Aphrodite)를 조각해 놓았는데요 이 신전은 이후에 시간이 흘러 놀라운 변화를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을 자처한 테오도시우스 2세는 이 신전을 교회로 개조해서 사용하였고 ‘거룩한 지혜’라는 영예를 부여하고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신전의 원래 주인이었던 아테네 아테네 여신이 지혜의 여신이라는 사실을 생각나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나중에 파르테논은 아테네 인들의 성모에게 바쳐지는데 800여 년 동안 정교회에서 사용한 후에, 아테네의 성 마리아를 위한 카톨릭 교회로 개조되고 15세기부터는 오스만 튀르크 사람들로부터 회교 사원으로 개조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이제 왼쪽을 보면 비슷하게 만들어진 3개의 조각이 나오는데요 가장 상태가 좋은 가운데 조각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 조각은 사원의 남쪽 절반에서 온 것인데요 페이리투스의 결혼 잔치에서 반인반수인 켄타우로스(Centaurs)와 전투민족인 라피스(Lapiths) 사이의 싸움을 보여줍니다. 마치 두 명의 레슬링 성수와 같이 싸우고 있는데요 라피스는 오른손으로 켄타우로스의 머리카락을 잡고 오른쪽 무릎을 켄타우로스에 대고 있습니다. 레슬링이라는 고대 영어 자체가 붙잡고 넘어뜨리는 경기를 모두 일컫기 때문에 한국의 씨름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고대의 레슬링은 조각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원시적인 몸싸움에서 유래된 스포츠였습니다. 사실 고대에는 레슬링이 실제 전쟁에서 사용되는 무술이었기 때문에 고대에는 눈 찌르기와 깨물기, 손톱을 이용한 공격 외에는 모든 공격이 허용되어서 사실상 그리스 시대의 종합 격투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참가자들은 상대를 땅에 매치고 균형을 잘 잡아야 했습니다.
지금 보시는 조각은 앞에서 조금 내려와 출입구로 가는 왼쪽 벽면으로 가다보면 보이실 텐데요 이 기병 행렬은 웨스턴 프리즈(Western frieze)로 불리는 조각입니다. 모든 인물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수염이 없는 청년들로 모피 모자, 무늬가 있는 망토, 높은 장화로 된 트라키아 부족의 특징을 지닌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들 기마 퍼레이드에 더해서 다른 조각들에도 아테네의 장로들이나 소년 소녀들의 장면 등 다양한 사람들을 표현한 조각들을 둘러볼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대리석 조각을 마음대로 뜯어갔기에 도둑질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1687년에 파르테논 신전이 오스만의 화약창고로 쓰이다가 베네치아에게 공격을 받아서 화약 유폭으로 지붕이 박살 나고 잔해와 조각상 파편들을 사람들이 갈아다가 건축물 재료로 사용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 문화재를 뜯어오기 위해 오스만 쪽 인사들을 매수하고 적자를 내면서까지 영국에 보내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20세기 들어서 그리스가 독립한 뒤로는 계속해서 이 조각의 환수를 요구하고 있지만 영국에서는 문화국제주의적 입장을 내비치며 거절하고 있습니다. 이제 18번 방에서 다시 돌아가는 문으로 연결되어 있는 중간 통로에 18a와 18b 방이 좌우로 뻗어 있는데요 먼저 18a 방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18a번 방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고대 아테네 지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아크로폴리스(The Acropolis)라는 모형이 나옵니다. 1:500 스케일로 축소된 모형을 보면 고대 도시에 대해 상상해 볼 수 있는데요 아크로폴리스는 말 그대로 높은 도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신전과 동상, 야외 대법관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은 고대 아테네의 신성하게 여겨지는 심장부였습니다. 기원전 448년경부터, 당시 아테네의 정치가인 페리클레스는 기원전 480-479년에 페르시아에 의해 파괴된 신전들을 재건하기 시작했습니다. 페리클레스의 건설 계획은 아테네의 그리스인들이 전쟁을 통해 얻은 전리품 등 여러 공물로 자금 조달을 하였습니다. 중심부는 파르테논 신전으로, 페르시아 침공 직전에 시작된 신전 건축 자리에 지어졌습니다. 기워전 438년에 아크로폴리스로 가는 완전히 새로운 관문(프로필라이아)이 건설되었지만 완공되지는 않았습니다. 모형도에서 앞쪽에 여섯 개의 기둥이 있는 건물과 좌우의 흰 대리석 건물들이 프로필라이아(Propylaia)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아크로폴리스 왼쪽 하단에는 회의를 열었던 법정 의회인 아레오파고스가 보입니다. 이곳에서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자들이 토론하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반대쪽 18b번 방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18번 a 방 가운데에는 파르테논 신전의 1:50 모형이 보입니다. 이 모형을 보면 18번 방 조각들이 어디에 붙어 있었을지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방 앞뒤로 있는 조각들이 메토프(μετόπη)라 불리는 긴 이등변 삼각형 부분에 있었고 그 아래 둘레로 있는 네모칸에 방안에 있던 다른 조각들이 있었습니다. 영국인들은 엘긴(Elgin)이 가져온 이 조각품들이 결과적으로는 훨씬 더 잘 보존할 수 있게 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신전이 있던 당시 아테네는 다양한 철학 학교들로 권위가 있었고 그때는 그 지혜가 대단했던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금 고대 그리스 철학 가운데 상당 부분은 잘못된 지식에서 기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아테네 현지에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파르테논 신전처럼 과거의 영화도 지금은 허울뿐인 것이 되었네요.
그리스 편은 총 5부로 진행하려 합니다. 1부에서는 파르테논 신전을 주로 살펴보았는데요 다음 주에는 다양한 유물들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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