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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투어 / 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 메디아-페르시아 3부

by 톡톡오늘 2021. 12. 29.

지난 아시리아인들과 같이 페르시아인도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현재의 이란의 민족 구성의 절반 이상이 페르시아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란에는 아직까지 과거 페르시아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일부는 무함마드보다도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페르시아계 이란인은 아랍인과는 다른 민족이며 언어적으로도 유럽인과 같은 인도유럽어족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일부 영화에서 묘사된 것과 같은 페르시아인을 흑인 혹은 서남 아시아인처럼 묘사한 것은 틀린 묘사이고 오히려 터키인들과 더 닮았습니다. 하지만 종교적으로 이슬람주의 성향이 강하기에 서구권 국가들과는 사이가 안 좋은데요 최근까지도 이란은 핵개발을 진행하면서 미국과 계속 안 좋은 관계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쯤 하고 박물관 유물들을 계속 둘러보시죠.

 

2부에서 보았던 은으로 된 잔 옆을 보면 도장같이 보이는 사자 모양의 유물이 보이는데요 손잡이도 있는 것이 마치 조선시대 왕이 사용하는 옥쇄하고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이 유물은 앞서 봤던 작은 저울추와 같이 고대 페르시아의 무게 단위를 알려주는 큰 저울추 입니다. 이와 같은 저울추는 아시리아 시기부터 사용되어 왔으며 사자 무게(Lion Weights)로 불리는 것입니다. 무게 단위는 31kg이 조금 넘는데요 바빌로니아 기준의 달란트의 무게에 해당됩니다. 달란트 무게 단위는 지역마다 조금 달라서 유대인들은 34kg, 1세기 그리스인들은 20.4kg이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가 다양한 단위를 사용하는데요 동양권에서 사용하는 근(斤), 평(尺), 리(里)와 같은 단위와 세계적으로 표준이 되는 미터(m), 그램(g)이나 미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마일(mile), 야드(yd), 온스(oz)와 같은 다양한 단위로 인해서 어떤 경우에는 협업이나 사업 거래에 혼란이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단위를 쓰는 나라들을 통합한 거대한 제국에서도 단위 체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52번 방 입구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유광 벽돌로 된 경비병이 보입니다. 이 벽돌은 다리우스 1세가 지은 궁전 안뜰에 흩어져 있었는데 프랑스 고고학자들의 굴착기에 의해서 발견되었습니다. 최소 18개의 문양이 복원되어서 대부분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유물은 영국 박물관에 영구 대여되어 있는 유물입니다. 수사의 궁전 동문에 위치해 있었는데 선명한 색깔로 조각된 그림을 보면 고대 세계의 문화 수준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경비병은 왕의 개인 경호원을 구성하는 유명한 페르시아 불사(Immortals) 부대입니다.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은 그리스 역사학자인 헤로도토스가 그들을 그리스어로 불사신(아타나토이:Αθάνατοι)이라 붙인 것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들은 무예가 뛰어난 엄선된 1만 명의 부대 가운데 한 명이 사망하거나 전투불능이 되면 즉시 새 대원으로 교체해서 부대를 변함없이 유지하기에 그렇게 불렀습니다.

 

경비병 유광 벽돌 오른쪽 아래를 보면 궁전에 있던 비문이 보이는데요 이 비문에는 ‘아케메네스 사람 다리우스 왕의 아들 크세르크세스’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이 비문이 발견되었을 당시부터 적혀있는 쐐기문자를 해독하기까지는 수 년이 걸렸는데요 이후에 3개의 언어가 함께 새겨져 있던 베이스툰 절벽의 비문이 발견된 이후로 해독이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고대 쐐기 문자 비문들이 해독이 안된 상태로 남아 있는데요 해독이 가능하게 된다면 앞으로 더 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밝혀지게 될 것을 기대하게 합니다. 이 비문에 나오는 크세르크세스는 앞서 언급되었던 그리스와의 일전을 벌인 왕으로도 유명하며 성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과 동일한 인물로 여겨지는 왕입니다.

 

이제 벽장 뒤로 돌아가서 중간 아랫 부분을 보시면 검은색으로 되어 있는 반월 모양의 비문이 보이실 텐데요 메디아 제국과 관련이 있는 엑바타나(Ecbatana)에 있는 여름 궁전에서 발견된 유물인데요 이 유물의 용도는 큰 기둥의 밑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엑바타나에 대해 묘사한 글이 있는데요 성벽의 크기와 강도가 매우 커서 안쪽에서 원을 그리며 솟아 있고 각 벽이 벽 너머에 있는 것보다 더 높게 지어졌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엑타바타의 여름 궁전은 아름답게 지어졌을 것으로 예상이 되는 묘사가 있는데요 서로 다른 색의 7개 동심원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합니다. 이 유물에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통치에 대해 적혀 있는데요 유대인들의 성전과 성벽 재건을 허락한 관대한 왕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성서 에스라 6:2에서는 엑바타나 성에서의 사건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유대인 성전의 재건을 허가하는 키루스의 칙령을 발견하고 다리우스 왕은 작업을 계속 진행하게 되는데요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왕의 칙령을 바꿀 수 없다는 원칙이 존중되었기에 그러하였습니다.

 

지금 보시는 유물은 고대 페르시아 유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유물로 꼽히는 키루스 원통 혹은 키루스 실린더(Cyrus Cylinder)입니다. 이 유물은 1879년 바빌론 유적에서 발견되었는데요 이 원통은 바빌로니아 제국이 페르시아 제국에 편입되었을 때 키루스 왕의 명령으로 제작되고 공표되었습니다. 이 원통은 키루스를 찬양하고 그의 계보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독재자인 나보니두스로부터 바빌로니아를 해방시키고 평화와 질서를 회복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빌로니아로부터 포로가 된 사람들을 본국으로 송환하고 각 지역의 종교 시설을 복원시킨 내용 그리고 바빌론의 성벽을 수리한 내역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대인 등 포로가 된 민족을 본국으로 돌아가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한 정책이 있기에 성서 에스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의 역사적 사실을 확증시켜주는 원통이기도 합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지금이나 과거나 서방 국가들과는 계속 사이가 안좋았는데요 고대에는 그리스와 국가의 운명을 건 전쟁을 수차례 치르기도 했었습니다. 이제 다음 편에서는 역사의 전환점 이후에 새로운 강국으로 부상하게 된 그리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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