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 초일류 강국으로 부상한 미국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많은데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군사 등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도 시시각각 미국에서 금리를 얼마나 올리는지 대통령이 무슨 결정을 하는지 미국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있는지에 따라 전 세계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 현상은 지금만 있었던 것은 아닌데요 과거 로마에서도 비슷한 분위기였을 것을 것으로 보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을 생각해보면 제국 구석구석 뻗어있는 길을 말하는 것도 있지만 로마의 질서에 다른 모든 지역이 따라야 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 말을 지금으로 바꾸면 ‘모든 길은 미국으로 통한다’로 될 것 같네요. 물론 미국을 찬양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고 현재 우리 세계가 처한 현실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부강했던 로마 제국 역시 역사책으로만 공부하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 볼만한 점인 것 같습니다. 이제 무려 2,200여 년간 국가를 유지하며 세계사에 큰 영향을 끼쳤던 로마의 유물을 5부에 걸쳐 살펴보겠습니다.
영국 박물관에서 로마 유물을 찾아보기 위해서는 지난 편에서 가보지 않은 장소로 찾아가야 하는데요 걷기 운동이 많이 될 것으로 기대가 되네요. 영국 박물관에 입장하자마자 가운데 대광장(Great Court)으로 들어가지 않고 기념품 파는 장소와 기부금을 받는 통이 있는 웨스턴 그레이트 홀(The Weston Great Hall)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는 왼쪽으로 올라가는 큰 계단(Sourth stairs)이 있는데요 2층에는 67번 한국관도 보이네요 여기를 지나쳐서 3층까지 올라가면 36번 방과 이어서 각각 청동과 대리석으로 된 두 동상이 보이는 37번 방이 나옵니다. 3층은 영국 박물관을 한 바퀴 도는 순환 구조로 되어 있는데요 이제 40번 방을 거쳐서 한 바퀴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마주하는 영국 로마인(Roman Britain)이라는 49번 방에 있는 유물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왼쪽으로 벽을 타고 가다보면 벽화들이 나오는데요 지금 보이는 것처럼 유리로 보호하는 벽화가 하나 보입니다. 이 벽화가 있는 로마시대 빌라는 1949년에 런던 외곽 지역인 다렌스 켄트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빌라는 기원 1세기 후반에 지어진 후로 300년간 여러 차례 리모델링되었지만 기원 4세기부터는 이 건물을 소유하게 된 한 가족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종교 및 숙박 시설로 운영이 되었습니다. 당시 기독교 상징의 의미로 그리스어 알파와 오메가 글자가 쓰여 있는데요 가톨릭의 마크인 P와 X를 겹쳐 놓은 의미는 예수를 의미합니다. 그리스어 X는 K의 의미(K : 키 혹은 카이)를 가지고 있는데요 영어의 (Ch)rist에서 Ch를 의미하고 P(R : 로우)는 R의 의미를 담고서 Ch(r)ist에서 r을 의미합니다. 이 표식의 유래를 조금 보자면 콘스탄티누스가 312년 맥센티우스와의 대결 전날 밤 꿈에서 십자가를 보고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하여 25년 뒤에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게 되는데요 태양신 숭배자였던 콘스탄티누스는 태양신 표식이었던 태양 바퀴와 비슷하게 생긴 키로 문양(PX)을 황제와 교회의 상징으로 채택하게 됩니다.
이제 중앙 복도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가다보면 중앙쯤에 두 명의 청동상이 나옵니다. 왼쪽 위에는 하드리아누스(Hadrianus)의 청동상이고 오른쪽 아래 보면 지금 보는 것과 같은 섬찟한 느낌의 청동상이 있는데요 로마 역사상 희대의 폭군, 사이코패스 황제로 알려진 네로(Nero)입니다. 조선의 연산군과 같이 즉위하고 초반에는 평도 좋았고 정치도 나름 잘하였습니다. 하지만 즉위 초부터 가족과 친척들을 살해하고 로마인들이 중요시 여기는 가족애와 도덕성, 청렴함 등과 거리가 있는 행동을 벌이게 되는데요 그리스도인 탄압과 어머니, 아내 등 일가친척을 살해하고, 근친상간을 하는 등 역사상 유래 없는 행위를 하게 됩니다. 네로는 온갖 기행을 저지르다가 64년 로마에 불이 났을 때 네로와 관련된 좋지 않은 소문이 돌기 시작했는데요 네로는 마침 이때 로마 신들에게 봉헌하는 축제에 참여하지도 않고 로마군 입대도 거부하고 있어서 이미지가 좋지 않던 그리스도인들에게로 방화사건으로 죄를 뒤집어 씌우게 됩니다. 그리고 잔인하게 그리스도인들을 숙청하는 모습과 함께 네로의 인기는 추락하게 되는데요 얼마 안가 쿠데타에 더불어 원로원으로부터 실각당하고 도망친 네로는 자살하게 됩니다.
청동상을 지나서 나오는 양 옆에 유리 벽장이 있는데요 먼저 왼쪽에 있는 유물 하나를 같이 보겠습니다. 오른쪽 아랫부분쯤에 보면 청동 판 두 개가 보입니다. 이것은 트라야누스 황제가 제1판노니아 기병 연대 스페인 장교인 레부루스에게 발행한 종군 증명서와 로마 시민권 그리고 배우자와의 합법적인 결혼 권리를 부여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러한 특권은 보통 25년의 군 복무를 마치고 퇴역하는 비 로마 시민으로 구성된 보조병에게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전과를 올린 군인에게 포상으로 일찍 수여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로마 시민권은 여러 방법으로 얻을 수 있었는데요 이 증명서처럼 외인부대의 고참 군인이 제대하면서 로마인이 되기도 하고 황제가 도시나 지역 전체 혹은 개인에게 그들이 수행한 봉사에 대한 상으로 이 특전을 주기도 했고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시민권을 사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민권이 있는 사람은 제국 전체에서 인정을 받으며 명예롭게 여겨지는 특별한 권리와 면제의 특전이 보장되었는데요 예를 들어 자백을 받아 낼 목적으로 로마 시민을 고문하거나 채찍질하는 것은 불법이었으며 속주 총독의 판결에 대해 로마 황제에게 상소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고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경우 로마 시민은 로마로 보내져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도 있었습니다. 로마 시민의 자녀 역시 시민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신고해야 하는데요 부모의 이름, 아이의 성별과 이름, 출생일을 함께 등록했고 로마의 자치구와 식민지와 주에 사는 시민을 등록한 인구조사를 통해 5년마다 갱신하였습니다. 시민권으로서의 특권이 이처럼 엄청났기 때문에 시민권을 위조하기도 했는데 위조하는 일은 심각한 범죄 행위로 여겨져 사형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시민권 반대편 오른쪽 벽장을 보면 로마 군인들의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먼저 아래에 칼이 눈에 띄네요. 로마 보병이 쓰던 칼인 글라디우스(Gladius)인데요 모든 검을 의미하는 라틴어 명사입니다. 그리고 이 검의 정식 명칭은 스페인 검이라는 의미인 글라디우스 히스파니엔시스(Gladius Hispaniensis)입니다. 주로 적과 직접 맞붙어 싸울 때 찌르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칼의 길이는 약 50센티미터 정도 되는 크기였는데요 길이가 짧았던 이유로는 당시 사람들의 신체적 기술적 한계와 군사적 문제도 있었는데요 당시 기술로는 튼튼하고 긴 칼을 만들기 어렵기도 했고 체구도 작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로마 군대가 막강했던 한 가지 이유는 군인들이 칼을 쓰는 훈련을 매일 했기 때문인데요 왼손으로 방패를 들고 있는 상태로 오른쪽 허리에 차고 있는 칼을 오른손으로 뽑아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능숙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칼날에는 종종 소유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전투에 앞서서 자신의 칼을 잘 관리하는 일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지금 보시는 로마 병사의 투구는 갈레아(Galea)라고 불리는 투구인데요 로마의 이웃인 에트루리아인의 영향을 받아 비슷한 유형의 투구에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투구는 여러 유형으로 발전하게 되는데요 중장보병을 위한 4가지 유형의 투구와 30여 가지 다양한 유형의 투구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지금 보시는 투구는 로마 군인을 떠올릴 때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인 제국 투구(Imperial Gallic helmet)입니다. 초기 로마 군인의 투구는 얼굴까지 보호하는 형태가 아닌 바가지 모양으로 머리만 보호하는 형태였다가 직업 군인이 등장하면서 제국 투구로 대체되었습니다. 이 투구는 목덜미 뒤로 경사져 있는 목 보호대가 있고 귀 윗부분으로 귀 보호대와 황동 장식되어 있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이후에 전형적인 1세기 중반의 군단 투구인 G형과 더 경사진 목보호대의 H형, 철 대신 구리 합금으로 만들어진 I형으로 나뉘게 됩니다. 그밖에도 파생돼 Italic D, E, G, H 유형도 있습니다. 또한 장교들은 투구에 일반적으로 빨간색으로 된 깃털이나 말털로 만든 볏이 있었는데요 기병대, 포병, 의무병 이렇게 3대 중보병 병과가 통합된 군단병(레기오나리이:Legioarii)은 볏이 세로로 되어 있었고 80여 명으로 구성된 부대를 지휘하는 백인대장(센추리언:Centurion)은 볏이 가로로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벽장 왼편으로 보면 로마 군인의 그림이 붙어 있는 또 다른 벽장이 나오는데요 로마 군인의 방패와 흉갑, 허리띠, 칼, 보조칼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칼은 앞서 다뤘으니 보조 칼, 창, 방패, 흉갑, 허리띠 순서로 소개해보겠습니다.
로마 병사의 그림의 허리를 자세히 보면 칼을 허리에 양쪽에 차고 있는데요 군인의 왼쪽에는 제식검(글라디우스)보다 좀 더 짧은 검이 착용되어 있습니다. 이 검은 푸기오(Pugio)라는 양날의 보조 무기입니다. 비록 길이는 짧지만 날이 넓고 튼튼해서 전투용 보조 무기로 충분히 사용 가능했던 것인데요 권력의 상징으로 로마 황제들의 초상이나 동상에 한 손으로 들고 있는 모습이 자주 나옵니다. 이 검의 화려함에 따라 지위 역시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고위 장교들이 사용하던 푸기오는 여러 보석이 박혀 있는 화려한 모양이었습니다.
로마군이 들고 있는 창은 필룸(Pilum)이라 불렸던 투창입니다. 가늘고 긴 창날은 투척하였을 때 상대를 직접 타격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상대방 방패에 박혀 구부러지거나 무겁게 해서 불편하게 만든 후에 방패를 포기하게끔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이 필룸은 멀리 던지는 용인 가벼운 것과 근접전에서 가깝게 던지거나 전투용으로 사용하는 무거운 것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장비를 월급에서 차감해서 무장해야 했던 로마군은 이 무기가 위력적이었다 하더라도 가격도 비싸고 한 번 던지는 용도인 필룸을 좋아하지는 않았는데요 이후에는 공동으로 구매해서 지출을 줄이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로마 제국 후기에는 필룸을 두 개씩 들고 다니다가 이후 변형형인 가성비 좋은 작고 던지기 좋은 베르툼을 사용하게 됩니다.
로마군의 방패는 스쿠툼(Scutum)이라 불렸고 라틴어로 방패를 의미하는 일반 명사였습니다. 지금 보는 방패는 제식 방패로 사용되는 방패였는데 로마 제국의 후기에는 다소 들기 쉬운 둥근 모양의 파르마(Parma)와 타원형인 케트라투스(Cetratus)같은 방패로도 대체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이 방패는 목제 방패였는데요 앞으로 볼록하게 생겼고 가장자리와 방패의 심 부분은 금속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길이가 1~1.2미터로 어깨에서 무릎까지 가릴 수 있었습니다. 여러 겹의 목제를 교차로 만들어서 내구성 좋은 합판에다가 바깥에는 가죽을 덮고 표면에는 천을 입혔습니다. 이 거대한 방패를 들고 전투에 나가 테스투도(Testudo)라는 방패벽을 쌓는 전술을 사용하면 전면과 측면에 있는 병사들이 서로를 보호하면서 밀집해 있기 때문에 방어하면서 이동하기에 효과적이었습니다. 방패는 한번 전투에 나갔다가 들어오면 다시 정비를 해줘야 했기에 방패를 수리하는 기술도 군인 개개인이 어느 정도 능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군의 흉갑은 로리카(Lorica)라 불렀는데요 라틴어로 흉갑을 말하기에 그리스 시절부터 거의 모든 흉갑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그렇게 불렀습니다. 이 로리카는 네 종류가 있어왔는데요 초창기에는 근육 모양으로 세공된 로리카 무스쿨라타(Lorica Musculata)와 켈트족이 입는 사슬 갑옷 스타일인 로리카 하마타(Lorica Hamata)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시는 로마군 하면 떠오르는 갑옷은 로리카 세그멘타타(Lorica Segmentata)라 불리는 판갑으로 된 갑옷인데요 1세기 중반부터 2세기 후반까지 사용된 갑옷입니다. 이 흉갑은 창(필룸)을 던지는 동작만 불편했고 그 외 동작은 불편 없이 가능했는데요 방어력도 흉부와 복부 어깨를 보호할 수 있었던 괜찮았던 흉갑입니다. 그리고 디자인 측면에서도 괜찮았기에 로마 황제들도 종종 입는 모습의 동상이 있습니다. 이후에 등장한 물고기 비늘 같은 금속 디자인의 로리카 스쿠마타(Lorica Squamata)가 로마 제국 시절이 주요 갑옷이었습니다.
로마군 허리에 있는 벨트는 전통적인 로마 군인 허리띠로 킨굴룸(Cingulum)이라 불리는 것이었는데요 발테우스(Balteus)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이 허리띠를 통해서 군인의 지위를 상징하기도 했는데요 법적으로 민간인은 착용이 안되었고 군인만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이 허리띠는 상체에 있는 갑옷의 무게를 덜어주도록 고안되어 있는데요 튼튼한 고리가 있어서 칼과 단검을 걸 수도 있었습니다. 앞서 군인들이 칼(글라디우스)을 오른쪽에 차고 있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장교들은 왼쪽에 차고 있었습니다. 이 허리띠에는 금속판을 둘렀는데요 각 청동판의 장식은 양각으로 화려하게 되어 있기도 했고 주석으로 도금되어 있기도 했으며 드문 경우에는 은박 코팅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이제 다시 이동을 해서 이전에 이집트편에서 봤던 65번 방부터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65번 방에 들어서서 왼쪽 벽을 따라 돌다보면 대각선 벽장 아래에 보면 다음과 같은 유물이 나옵니다. 이 유물의 오른쪽은 로마 군인이 신던 가죽 신발이고 왼쪽은 벨트입니다. 신발과 벨트는 기원 1-2세기쯤에 사용되던 것으로 보입니다 신발을 보면 1세기 로마 군인들이 신던 신발이 지금 보아도 상당히 고품질의 신발로 보이는데요 일반적으로 발목이 높고 바닥이 세 겹의 가죽으로 되어 있는 샌들 형태의 신발을 신었습니다. 바닥에는 금속으로 된 징이 박혀 있어서 지형이 험한 곳을 걸을 때에도 발을 잘 지지해 주었습니다. 왼쪽에 있는 가죽 벨트에는 앞서 보았던 킨굴룸이나 발테우스의 변형으로 보이는데요 이러한 가죽에는 금속판이 박혀 있어서 허리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이 허리띠는 자세히 보면 끈으로 단단하게 조일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는데요 전투 중에 안정된 자세로 싸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왼쪽 복도를 따라 들어가서 70번 방까지 박물관을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70번 방의 유물은 2부에서 살펴보게 될텐데요 로마 제국의 인물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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