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질문을 많이 사용합니다. 특히 “왜?”라는 질문이 바로 철학의 근본인데 풀리지 않는 보편적인 질문들을 사람들은 스스로 질문하고 논증하고 과학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등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재정립하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똑같이 해왔지만 서양 철학은 그리스에서 시작해왔다고들 생각합니다. 그리스 철학도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바탕으로 두기는 했지만 무엇인가를 정리하고 서술하기 좋은 그리스어라는 무기를 사용해서 그리스 시대부터 고대의 생각들을 잘 정립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철학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뉘는데요 종교적인 성격의 모든 개념들은 실증할 수 없기에 과학으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실증주의(Positivism),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고 인간은 절대적으로 냉담한 우주 속에 버림받은 상태라는 실존주의(Existentialism), 관찰과 추리를 통해 존재에 대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어떤 지식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회의론(Skepticism), 교육이나 도덕 및 정치를 개선하는 일과 같은 인류의 유익을 위한 실용적인 것만이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실용주의(Pragmatism)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철학을 뒷받침하는 사상이 대부분 그리스 철학에서 시작을 했는데요 소피스트, 스토아파, 에피쿠로스, 회의파 등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그리스 철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잠시 후 다루어 보겠습니다.
이제 23번 방을 반바퀴 돌면 계단으로 올라가는 방이 있는데요 알렉산더의 세계(The world of Alexander)라는 22번 방으로 올라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올라가서 안으로 들어가 보면 가운데 큰 바위 같은 것이 가운데 있는데요 이 조각은 아르테미스 신전의 대리석 기둥 원통입니다. 기원전 325-300년경에 아르테미스 신전 남서쪽 모퉁이에 있던 것인데요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가장 잘 보존된 기둥 원통이기도 합니다. 이 기둥에는 7명의 인물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중 2개는 거의 완전히 지워졌습니다. 묘사된 인물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오른손에 케리케이온(날개 달린 지팡이)을 들고 머리 뒤에 페타소(챙이 넓은 태양 모자)를 걸고 위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영혼을 저승으로 이끄는 지도자(Hermes Psychopompos)로 변장해서 여기 나타나는데 그가 인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로 여성인 이피게니아(Iphigenia), 알케스티스(Alkestis), 또는 에우리디케(Eurydike)를 포함해서 많은 비극적인 영웅들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다른 이론으로는 페르세포네의 신화에 근거해 있습니다. 죽음이 관련되어 있다는 암시는 죽음의 의인화인 타나토스(Thanatos) 일 수 있는 칼을 든 날개 달린 젊은이의 존재로 뒷받침됩니다.
신전 기둥 원통 뒷면 계단에서 왼쪽 반시계 방향으로 한바퀴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두 명의 두상이 보이는데요 왼쪽은 고대 그리스의 유랑시인 호메로스(Homeros)이고 오른쪽은 서사 시인인 헤시오도스(Hesiodos)입니다.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을 다룬 ‘일리아드’나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10년 동안 귀환하는 여행기를 다룬 ‘오디세이’, 호메로스 시집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는데요 현대의 많은 철학이 호메로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호메로스는 생각을 보편화시킨 인물인데요 사건들에는 인과 법칙이 있고 세상은 어떠한 법칙에 의해서 돌아간다고 생각한 최초의 서양인이기도 합니다. 이후에 생겨나는 고전 그리스 철학자들은 호메로스의 영향을 받아 발전하게 됩니다. 헤시오도스는 우주의 탄생과 신들의 기원을 다룬 ‘신들의 계보’와 농부의 할 일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일과 날’, ‘헤라클레스의 방패’, ‘여인열전’ 등 여러 작품을 남겼습니다. 헤시오도스는 호메로스와 함께 그리스 신화와 문학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역사학자인 헤로도토스는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가 그리스인들에게 신을 만들어 주었다고까지 했습니다. 그의 작품 역시 호메로스와 함께 후대 그리스, 로마의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게 됩니다.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는 그리스의 많은 신화와 전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리스 신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도 글을 남겼습니다. 그가 묘사한 많은 신들과 여신은 몸이 크고 초인적이지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자기들끼리 혹은 사람들과 성관계를 가지며 가족을 이루었으며 혐오스러운 다양한 일들을 저지르는 모습 역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좀 더 왼쪽으로 몸을 돌리면 네 명의 두상이 나오는데요 유명한 그리스 철학자들이 순서대로 나옵니다. 왼쪽부터 소크라테스(Socrates),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 크리시포스(Chrysippus), 에피쿠로스(Epicurus)입니다. 모두 알렉산더 시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인물들인데 한명씩 살펴보겠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 자신이 철학적인 글을 쓴 적은 없습니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년)의 제자들과 당대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서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참다운 행복이란 덕을 추구하는 일에서 비롯되고 궁극적인 선이라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정신을 혼란시킨다는 물질적인 사치를 멀리하고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유지하였는데요 대부분의 사상가는 어떤 생각을 제시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증을 펼쳤지만 소크라테스는 다른 철학자의 이론을 듣고 그의 생각의 결함을 드러내고자 했는데 이것이 유명한 산파술입니다. 또한 인간 영혼이 불멸이라고 가르쳤는데요 사람이 죽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지역으로 떠나가 그 존재의 나머지 기간 전체를 신과 함께 보낸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제자 플라톤에게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다음으로 안티스테네스(기원전 445-365년경)가 보이는데요 그는 소크라테스의 기본적 가르침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덕만이 유일한 선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단지 정신을 혼란시키는 일이 아니라 일종의 악이라 여겼는데요 극도로 반사회적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 몹시 경멸적인 태도를 나타내게 됩니다. 이들은 냉소주의자로 알려지게 되는데요 냉소주의자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시닉(Cynic)은 까다롭고 투명스러운 행동을 묘사한 그리스어 단어 키니코스(kynikos)에서 유래하였는데 ‘개와 같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크리시포스(기원전 280-207년경)인데요 그는 초기 스토아 학파 철학자입니다. 스토아 파는 기본적으로 물질과 힘이 우주의 기본 원리이며 악덕과 미덕조차 물질적인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인격 신을 믿지 않았고 모든 것이 비인격적인 신의 일부이며 인간 영혼은 이러한 근원에서 나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몸이 죽어도 영혼은 살아남는다고 생각한 스토아 파는 영혼이 마침내 우주와 함께 멸망될 것이라고 믿거나 신에 재흡수될 것이라고 믿기도 하였습니다. 덕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고통이나 쾌락에 초연하고 부나 가난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겪을 경우에는 자살도 허용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다음 보이는 인물은 에피쿠로스(기원전 341-270년)인데요 그가 창시한 철학은 꽤 오랫동안(7세기) 융성했습니다. 그는 개인의 쾌락이 인생에서 최고의 선이라는 사상을 중심으로 발전시켰는데요 최대의 쾌락을 얻으며 살되 과도하게 탐닉할 때 오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절도를 지킬 것을 주장했습니다. 육체의 쾌락보다는 정신적 쾌락이 강조되었고 누구와 함께 먹느냐가 무엇을 먹느냐보다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지식은 오로지 종교적 두려움과 미신을 없애기 위한 것이어야 했으며 없애야 할 두 가지 주된 두려움은 신들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신을 믿기는 했지만 신들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사람이 하는 일에 관심이 없기에 신을 향한 어떠한 행위도 소용없다고 여겼고 사람은 죽으면 원자들도 해체되어서 모든 것이 끝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돌아가는 것으로 주장하였습니다. 에피쿠로스 자신은 독신 생활을 추구하였지만 제자들에게 그러한 제한을 가하지는 않았습니다.
철학자들 오른쪽 벽 위로 두상이 하나 걸려있는데요 이 인물은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우스입니다. 머리만 걸려있어서 느낌이 잘 오지는 않는데요 대한의사협회나 국군의무사령부 등 여러 나라의 의사 협회와 단체의 로고를 보면 지팡이에 한 마리의 뱀이 감긴 로고를 의학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지팡이를 들고 있는 신이 아스클레피우스입니다. 뱀을 사용하게 된 이유는 아스클레피우스가 제우스의 번개를 맞아 죽은 글라우코스를 치료하던 중 뱀 한 마리가 방 안에 들어왔는데 이에 놀란 아스클레피우스가 자신의 지팡이로 그 뱀을 죽이게 됩니다. 잠시 후 또 한 마리의 뱀이 입에 약초를 물고 들어와 죽은 뱀 입 위에 올려놓자 죽었던 뱀이 살아나는 것을 보고 뱀이 한 것과 같이 약초를 글라우코스의 입에 대어 살려내게 됩니다. 이후 그는 존경의 의미로 자신의 지팡이를 휘감고 있는 한 마리의 뱀을 자신의 상징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뱀과 관련된 역사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는 나무에 걸린 뱀은 부활과 치유의 상징이었는데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난다고 여기기에 그러하였습니다. 하지만 성서에서는 뱀이 좋지 않은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네요.
뒤에 있는 벽장 아래에 보면 허리띠처럼 길게 생긴 금으로 만든 유물이 보이는데요 반대편 벽장에서도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유물입니다. 이 유물의 용도는 다이아뎀(Diadem)이라 불리는 왕관 형식의 여러 장식이 달린 머리띠입니다. 그리스어 디어데마(διάδημα)에서 왔는데요 둘러메다는 의미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얇은 금판과 인상적인 장식으로 만들어진 다이아뎀은 기원전 5세기부터 로마 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무덤에서 발견되었는데요 안티오코스 3세의 동전에도 이러한 다이아뎀을 쓰고 있는 모습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초기에는 리본 형태로 종종 왕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서 머리에 감싸기도 했고 고대 스포츠 경기에서 승리한 선수에게 왕관으로 씌울 때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금과 같은 금속 형태로 바뀌게 되었는데요 왕권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왕이나 왕족들이 많이 썼습니다.
이제 반대편으로 넘어가서 왼쪽으로 계속 돌다보면 비석 오른편에 두상 두 개가 있는데요 왼쪽의 아에스키네스(Aeschines)와 오른쪽의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입니다. 이 두 명은 모두 웅변가이자 정치가였으며 정치적으로 대립한 인물이었습니다. 아에스키네스(기원전 389?-314년)에 대해 먼저 소개하자면 아테네의 10대 웅변가(Attic Orators)중 하나였는데요 아테네 내부에서의 친마케도니아 대표자로서 반마케도니아의 중진인 데모스테네스와 격렬하게 대립하였습니다. 그는 중장 보병으로 만티네이아와 그 밖의 싸움에 종군하였고 기원전 348년에 메가로폴리스에 외교사절로 갔다가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의 능력을 알게 되면서 친마케도니아 파가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마케도니아의 침략에서 아테네와 그리스의 자유 독립을 주장한 데모스테네스와 대립하게 되었으며 기원전 337년에 데모스테네스에 대한 소송에서도 실패하면서 로도스 섬으로 망명한 뒤에는 웅변 교사로 생을 마치게 됩니다.
이어 오른쪽에 있는 인물은 데모스테네스(기원전 385?-322년)인데요 신흥 제국으로 부상하는 마케도니아의 위협을 받고 있던 그리스를 대변하여 반마케도니아 운동에 앞장섰고 그리스의 도시국가들(폴리스)이 연합해서 마케도니아에 맞서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테네와 테베가 연합해서 대항했는데, 기원전 338년에 카이로네이아에서 마케도니아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후에 점차 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필리포스 2세가 죽은 뒤에도 그리스의 여러 동시와 동맹을 맺어 마케도니아 군을 공격했고 페르시아 장군들에게도 마케도니아를 공격할 것을 권유하기도 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알렉산더를 피해 망명 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알렉산더가 죽은 뒤에도 마케도니아를 공격해 몰아내려 했지만 실패하고 자살로 생을 마치게 됩니다.
이렇게 알렉산더가 등장하는 시기 전후의 인물들에 살펴보았는데요 이제 마지막 5부에서는 알렉산더 대왕과 관련된 유물에 대해 살펴보면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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