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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투어 / 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 그리스편 5부

by 톡톡오늘 2022. 1. 5.

그리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알렉산더인데요 전 세계에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다른 나라의 정복 전쟁과는 다르게 가는 곳마다 수많은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도처에 70여 개나 세우고 그 도시에 그리스어(코이네)를 사용하는 그리스 철학과 문화를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꽃 피우게 합니다. 이러한 문화는 심지어 아시아 전 지역으로까지 퍼졌는데 아시아만의 고유한 문화라고 여겨졌던 불교문화도 사실상 헬레니즘 문화가 반영된 것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짓고 70만 개의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모았는데 언어, 문학, 의술, 과학, 수학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자료들이 모두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대 지식인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지식층이면서 금융과 상업에 능통한 유대인들이 많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유대인들 가운데는 히브리어를 잘 사용하지 못하고 그리스어를 잘하는 유대인 자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요 유대인 정체성까지 흔들리는 자녀들에게도 성서의 내용을 알려주기 위해 기원전 280년경에는 70명의 학자들이 모여서 만든 ‘70인 역’이라는 최초의 그리스어 성경 번역판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알렉산더 대왕과 관련된 유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4부에 이어서 22번 방을 좀 더 둘러보겠습니다.

 

지금 보이는 비문은 알렉산더 대왕의 이름이 새겨진 비문인데요 프리에네(Priene)라는 소아시아(터키)에 있던 도시의 아테나 폴리아스의 신전에서 나왔습니다. 기원전 340년경 프리에네의 주민들은 새로운 항구 도시를 비탈과 계곡을 따라 건설하였는데요 퇴적물로 인해서 지금은 내륙지방으로 바뀌었습니다. 알렉산더가 기원전 334년 이 항구 동시에 이르렀을 때는 여전히 아테나 폴리아스의 신전이 건축 중이었는데요 할리카르나소스의 묘지 건축 가중 한 사람인 피토스가 설계한 이 건물의 완공을 위해 자금을 댔습니다. 그에 대한 답례로 신전에 알렉산더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비문에는 ‘알렉산더 왕이 아테나 폴리아스의 신전을 헌정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알렉산더는 종교심이 강한 사람이기도 했는데요 자신을 신격화하고자 했고 정복한 지역의 신전마다 제사를 지내고 점을 치기도 했습니다. 이집트에서도 암몬 신의 신전으로부터 암몬의 아들로 공식 선언을 받았고 바빌론에서는 벨 신에게 바치는 제사에 참여하기도 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도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유대인 대제사장은 그를 영접하고 그리스의 정복 활동에 관한 다니엘의 예언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그 때문에 알렉산더는 예루살렘을 공격하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지금 보는 흉상은 알렉산더의 모습을 조각한 것 가운데 가장 유명한 흉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원전 2세기-1세기 전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흉상입니다. 고전에 따르면 알렉산더는 그의 모습을 남기기 위해 소수의 예술가들을 선정하였는데 조각가 리시포스와 화가 아펠레스와 같은 유명한 예술가들이 참여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당시 모습을 복구한 작품은 없지만 보석과 동전의 초상화와 더불어 다양한 곳에 조각품이 남아 있는데요 이것들은 대부분 알렉산더가 사망한 후에도 오랫동안 제작되었으며 초상화는 일반적으로 유사한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다양한 스타일로 제작되었습니다. 알렉산더는 당시 혁신적으로 항상 깨끗한 면도를 하였는데 이전의 모든 그리스 정치인과 통치자들은 초상화에 수염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면도를 하는 왕실의 유행은 거의 500년간 지속되었는데 거의 모든 헬레니즘 왕들과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 이후 하드리아누스가 수염을 기르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알렉산더는 헬레니즘 왕권의 상징으로 머리에 리본을 묶은 최초의 왕이기도 합니다. 알렉산더의 초기 흉상은 역동적인 머리카락과 위로 향한 시선 등 성숙하고 영웅적인 스타일로 만들어졌는데요 그는 겨우 32세의 나이에 바빌론에서 말라리아로 사망했는데요 이 흉상은 사망 이후에 만들어진 흉상보다 더 젊게 만들어서 아마도 더 신격화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습니다.

 

구글 스트리트뷰로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동상 오른편에는 알렉산더 사후에 네 개의 제국으로 나뉘게 되는데 각각의 제국을 통치한 네 명의 장군의 초상이 담긴 동전이 있습니다. 9번 동전은 트라키아와 소아시아를 통치한 리시마코스(Lysimachus)이고 10번 동전은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를 통치한 카산드로스(Cassander), 11번은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을 통치한 프톨레마이오스 라고스(Ptolemy Lagus), 14번은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일대를 통치한 셀레우코스 니카토르(Seleucus Nicator)입니다. 개인적으로 검색해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 다른 방으로 가기 전에 벽장에 있는 유물 하나만 더 보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보이는 램프는 기원전 3-2세기 것인데요 각각 달려있는 램프의 숫자에 따라 용도가 달랐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것을 포함해서 1-3개 구멍이 달린 것은 휴대용 램프이고 왼쪽에 12개의 구멍이 달린 램프는 방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램프는 주로 올리브기름이나 테레빈 나무에서 얻은 기름을 사용해서 밝혔는데요 기근이 들었을 때는 기름이 부족했기에 모든 심지 구멍을 다 사용하지 않고 일부만 사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다른 방으로 가볼 텐데요 가운데 대광장(Great Court)으로 나가서 3층으로 가서 지난 메디아-페르시아편을 주로 다뤘던 52번 방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52번 방에 들어가자마자 오른쪽 벽장에 보이는 옥수스 보물 왼쪽에 보면 점토 비문이 보이는데요 1번 점토판은 알렉산더와 관련된 내용이 나옵니다. 쐐기문자로 된 이 점토판은 페르시아 왕에 대한 희귀한 역사 문서입니다. 첫 번째 파편은 고대 페르시아어로 되어 있고 수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다리우스 대왕(기원전 521년-486년)의 칭호와 정복 목록이 나오고 두 번째 파편은 아들에 의해서 크세르크세스가 살해된 사건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파편은 기원전 331년 10월 1일 알렉산더가 페르시아의 마지막 왕 다리우스 3세를 가우가멜라에서 패배시킨 것과 승리한 이후에 바빌론으로 입성한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가우가멜라 전투에 대해 조금 소개하자면 25살의 알렉산더는 이집트에서 나와 다리우스 3세와 만나게 됩니다. 다리우스 3세는 제국의 군대를 끌어모아서 90,000명의 대군을 이끌고 가우가멜라에서 만나게 되는데요 알렉산더는 불리한 전투 상황을 기술적으로 역전시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알렉산더와 정예 부대(헤타이로이)를 견제하는 페르시아의 중앙 별동대를 찢어내기 위해 우익으로 이동시키면서 끝에 있던 마케도니아 보병으로 붙잡아놓고 찢어진 중앙 틈으로 알렉산더는 정예부대와 함께 다리우스를 향해 돌진하게 됩니다. 이때 다리우스는 겁을 먹고 도망하면서 알렉산더의 승리로 전투가 마무리되었는데요 알렉산더는 왕인데도 불구하고 항상 자신의 기병대에서도 가장 위험한 꼭짓점에서 돌격하였기 때문에 마케도니아군의 사기는 대단하였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이 전투로 페르시아는 멸망하게 되고 페르시아 군에서도 가장 잘 싸운 마자이오스는 항복하며 바빌론을 넘기게 됩니다.

 

이제 52번 방 출구 왼편 벽장에 있는 점토판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중에서도 17번 점토판은 바빌론에서 발견된 알렉산더의 죽음을 알려주는 파편입니다. 이 파편에는 기원전 323년에서 322년 사이의 2개월 동안 관측된 천문학적, 기상학적 현상에 대한 기록인데요 음력 29일 알렉산더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기는 알렉산더를 단순히 ‘왕이 죽었다’ 고만 적혀 있습니다. 알렉산더는 32살의 젊은 나이에 아라비아 반도 원정을 준비하던 중에 갑자기 쓰러지게 되었는데요 쓰러지기 직전까지 알렉산더는 해군 제독이었던 네아르코스와 파티를 하면서 아침이 될 때까지 술을 마셨었습니다. 그 뒤 몸에 고열이 계속되었고 일주일 후에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태가 오게 되었으며 알렉산더가 죽기 2일 전에 지위가 높은 몇몇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이들을 반기는 손을 간신히 들어 올릴 수 있었습니다. 현대 학자들은 알렉산더의 증상을 말라리아에 감염된 증상과 비슷한 점을 들어 말라리아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습니다.

 

이제 아래 21번으로 되어 있는 점토판은 12궁도(조디악:Zodiac)에 있는 행성들의 월별 위치와 현상이 일어나는 날의 특징에 대해 알려주고 있는데 동지와 춘분 일식의 날짜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고대 세계의 다양한 문화에서 달력에 표시되었던 시리우스 항성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바빌론에서 발견되었는데요 기원 61-62년쯤에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 가운데서도 동물의 원을 의미하는 조디악으로 대표되는 고대 점성술은 인도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는데요 현대 동양의 12궁도도 여기에서 유래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헬레니즘은 인도의 간다라 미술에도 영향을 주어 중국의 남북조부터 한국의 삼국시대 문화와 일본의 아스카 문화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번 그리스 편에서는 알렉산더의 죽음으로 마치게 되었는데요 알렉산더 사후에 제국이 분열되고 이후에 나타날 새로운 제국이 그리스 서쪽에서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제국을 유지하였던 로마 제국 유물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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