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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투어 / 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 이스라엘편 1부

by 톡톡오늘 2022. 1. 15.

 

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에는 이스라엘과 관련된 유물 역시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요 한 민족이나 국가의 문화유산은 그 나라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영국 내에서의 유대인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 인구의 0.2%(약 1400만 명) 밖에 안 되는 유대인들은 노벨상 수상자의 25%를 차지하고 있고 세계의 경제, 문화, 예술, 언론, 학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요 이들은 일찍부터 많은 탄압과 재산을 빼앗겼기 때문에 무형적인 가치들의 중요성에 눈을 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지금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모든 분야에서 유대인들은 구석구석 관련이 안된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인데요 그렇기에 유대인들의 역사는 과거 세계 역사의 흐름 속에서 많은 영향을 주고받게 됩니다. 이제 영국 박물관의 마지막 이스라엘 편을 통해서 여러 유물들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편은 총 4부로 진행하려 하는데요 구석구석 여러 유물들에 대해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1층의 Great Court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영국 박물관 대광장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가면 있는 1번 계몽(Enlightenment)이라는 방으로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방 중간에 복제된 로제타석 뒷편에 보면 벽장에 많은 벽돌들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그 벽장 오른쪽 아랫부분을 살펴보면 지금 보이는 사마리아 성경 비문이 보입니다. 이 비문을 조금 소개하자면 문설주(메주자:Mezuzah)로 사용이 되어서 집 입구 기둥에 있던 부분인데요 신명기 6:7; 23:15; 28:6을 기록하였습니다. 사마리아인의 배경을 좀 더 살펴보자면 사마리아인은 원래 이스라엘 북쪽 10개 지파의 왕국의 수도인 사마리아를 따서 북쪽 이스라엘 왕국이라고 지칭되었는데요 이후에 아시리아 제국이 북쪽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킨 이후에는 아시리아인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섞이면서 유대교와 구별되는 별도의 종교를 구성하여 사마리아인으로 구별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남쪽 이스라엘 왕국인 유대 왕국이 바빌로니아 제국에 멸망된 후에 망명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도 성전 재건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거절하였고 심지어 성전 재건조차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마리아인들이 그리심산에 그들만의 성전을 지을 때 두 지역은 지역은 다시 합쳐질 수 없는 지역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세 오경은 받아들였기 때문에 흥미롭게도 이 비문에는 그 내용의 일부를 적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은 모두 이스라엘인(Israelites)의 후손으로서 히브리 민족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요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아브람)을 이웃인 아모리 사람들과 구분하기 위한 명칭으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이 살던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우르에서부터 유물을 하나씩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3층으로 올라가 54번 방부터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방은 아나톨리아와 우라르투 기원전 7000-300년(Anatolia and Urartu 7000-300BC)이라는 방인데요 터키부터 아르메니아까지 걸쳐있는 지역의 고대 왕국입니다.

54번 방을 지나다 보니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많이 숭배하는 신의 형태가 보이는데요 왼쪽에 초기 청동기 시대(The Early Bronze Age 3000-2000BC) 벽장에 오른쪽 부분에 은으로 만든 소가 보입니다. 소의 어깨와 측면등에 금으로 세공해 넣었는데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특히 수소의 경우 그 큰 힘으로 많은 새끼를 둘 수 있는 강한 생식력이 태양의 힘을 상징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주신인 마르두크의 상징 역시 수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고대 이집트 유물을 살펴보면서 선택된 소를 아피스의 화신으로 여기면서 극진하게 돌보고 미라까지 만들었다는 것을 보면 메소포타미아 일대에서 이러한 숭배가 유행했음을 알 수 있는데요 고대 이스라엘에서 이집트를 탈출하자마자 송아지 숭배를 하였고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뒤로도 오랜 기간 성행했던 송아지 숭배가 어디서부터 유래해 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 55번 방을 지나 56번 방인 메소포타미아 기원전 6000-1500년(Mesopotamia 6000-1500BC)이라는 방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방에는 우르의 유물이 많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이 유물이 알려지게 된 1920-1930년대는 고고학의 전성기였던 시기였습니다. 1922년 하워드 카터가 이집트 왕가의 계곡에서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하여 대중들은 놀라게 되는데요 1922년부터 34년까지 레너드 울리(Leonard Woolley)경이 우르를 발굴했을 때도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르에서 2000개의 매장지를 발굴하였는데요 특히 왕릉에서 나온 정밀하게 만들어진 유물들은 성서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삶(창세기 11:31)에 대해 추측해 볼 수 있는 유물이었기에 많은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이 당시 벨기에의 알버트 왕과 같은 유럽의 왕족들은 발굴물을 직접 보기도 했는데요 1928년에는 울리의 아내인 캐서린과 친구인 유명한 소설 작가인 아가사 크리스티가 현장에 와서 고고학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울리의 젊은 고고학 현장 조수인 맥스 말로완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우르의 유명한 유물들을 하나씩 둘러보겠습니다.

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왼쪽에 이러한 유물이 보이는데요 기원전 3000년 초반에 우르 왕실에서 하던 2인용 경주 주사위 게임입니다. 우르의 왕실 게임(Royal Game of Ur)이라고 불리는 이 게임은 영국의 고고학자인 레너드 울리(Leonard Woolley)경이 우르의 왕실 묘지를 발굴하는 동안 발견되었기에 그렇게 불리었는데요 게임의 규칙은 바빌론의 점토판에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게임은 주사위를 굴려 보드의 코스를 따라가면서 상대방보다 먼저 자신의 말을 모두 없애는 것입니다. 이 게임은 아시리아 제국의 산헤립 라마수 석상 아래에 그려져 있던 게임판 하고도 같은 것인데요 고대 세계에서 많이 하던 보드게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 보드 게임은 메소포타미아 전역의 모든 사회 계층의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멀리는 크레타섬과 스리랑카와 같은 지역에서도 이 게임이 발견되었으며 이집트에서는 이 보드 게임을 하는 파라오의 모습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이 게임이 종교적인 의미를 갖게 되어 게임 진행자의 미래를 반영시키고 신이나 다른 초자연적인 존재의 메시지를 전달받는 것으로 믿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제 중앙 복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서 보면 고대 수금이 나오는데요 이 수금은 The Silver Lyre라 명명된 고대 악기입니다 이 악기 역시 레너드 울리(Leonard Woolley)경이 보드 게임이 발견된 우르의 왕실 무덤에서 발견했는데요 이 무덤 진입로에는 마치 입구를 지키고 있는 듯한 6명의 경비병과 무기를 든 병사의 모습이 있었고 구덩이에는 정교한 장신구를 차고 있는 68명의 여성 유골이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4명이 악기 주위에 있었는데요 악기의 나무는 삭아서 없어졌지만 나무가 있었던 자리에 석고를 부어서 모양과 장식을 복원하였습니다. 이 수금의 황소 머리의 은은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은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는 공명판은 나무 틀을 따라 복원하였고 상감 장식은 복원한 것이지만 현과 지지대는 복원하였습니다. 전면 패널에는 언덕 위의 나무와 함께 있는 사슴, 염소를 공격하는 사자, 가젤을 공격하는 사자가 각각 그려져 있습니다. 고대 음악은 많은 축하 행사나 의식에서 중요한 요소였는데요 악기와 함께 놓여 있던 여성들은 아마도 죽기 직전 장례식에서 음악을 연주했을 음악가였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보는 이 장신구는 우르가 얼마나 진보한 사회였는지 알 수 있는 유물인데요 우르가 속한 지역은 이러한 장신구를 만들기 위한 금이나 은 혹은 청금석(라피스라줄리:Lapis Lazuli)과 같은 원재료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집트, 아나톨리아, 누비아와 같은 지역에서 수입해 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신구에 포함된 카넬리아 구슬은 이란 동부에서도 출토되었는데요 고도의 작업이 수반되는 이러한 예술품은 수메르 지역의 장인들을 통해서 수입해 온 원자재를 최종적인 형태로 작업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유물이 발견된 무덤에는 왕과 여왕들의 시종이었던 남종과 여종이 함께 순장되었다는 증거도 발견하였습니다.

지금 보는 유물의 이름은 덤불 속의 숫양(Ram in the Thicket)이라 불리는 조각상 장식용 스탠드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양으로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은 양이 아닌 염소입니다. 이처럼 덤불 속의 숫양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유물의 성경적 암시를 좋아하는 고고학자 레너드 울리에 의해서 창세기 22:13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 대신에 바친 덤불에 걸린 숫양에 대해 떠올리면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 염소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둑을 따라 펼쳐진 높은 나뭇가지에 있는 잎을 먹기 위해 뻗어 있는 인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조각품의 표면을 장식하기 위해 망치로 두드린 판금을 나무에 씌워서 만들어졌는데요 염소의 털을 묘사하기 위해 복잡하게 조각된 껍질과 청금석(라피스라줄리:Lapis Lazuli)으로 덮여 있고 얼굴은 눈과 수염 뿔을 강조해서 세밀한 표현을 하였습니다. 초기 메소포타미아 왕조의 부와 지위, 신념, 무역 통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장식이 나온 무덤은 다른 여성들보다 더 예우가 높은 무덤이었는데요 무덤 안 주인에게는 달의 신인 난나의 대사제였음을 암시하기도 다른 유물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그 왼쪽에 보이는 지금 보이는 유물은 우르의 깃발(Standard of Ur)라는 유물입니다. 레너드 울리경이 처음으로 발견한 이 유물은 속이 빈 나무상자로 조가비, 붉은 석회암, 청금석(라피스라줄리:Lapis Lazuli)으로 모자이크 형태로 만들어진 상자였는데요 정교하게 상감된 장면을 통해서 전쟁과 평화의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장식을 보면 전쟁에서 포로들의 옷을 발가벗긴 채 묶어서 창을 들고 있는 왕 앞으로 데려가고 있으며 아래에는 수메르 군의 강한 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반대편의 평화의 판에서는 왕과 귀족들이 승리를 자축하며 연회를 즐기는 모습이 있는데요 여러 전리품을 연회장으로 가져가는 행렬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유물의 사용 목적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현재까지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이 유물이 발견되었을 당시에 나무틀은 이미 부패해서 조심스럽게 발굴 작업을 해야 했는데요 마치 폼페이 희생자들을 석고를 부어 확인했던 것처럼 먼저 이 유물의 틀 안에 석고와 왁스를 부어서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이 유물이 발견되었을 당시에는 이집트 무덤에서처럼 무덤의 주인이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을 함께 넣는 방식이 아니라 빈 그릇과 동물 뼈와 같은 식사의 잔해와 함께 발견되어서 그들이 왕의 죽음과 관련된 마지막 제사에 참가한 뒤에 주인과 동행하도록 사형(아마도 독살된 것일지도 모릅니다)에 처해져서 함께 묻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편 1부를 마쳤는데요 1부에서는 이스라엘과 관련된 내용보다는 우르에 대한 내용을 더 많이 담았네요. 히브리인의 시작이라 볼 수 있는 아브라함이 어떤 도시에서 자라 왔는지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제 2부에서부터는 이스라엘의 유물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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