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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투어 / 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 아시리아편 2부

by 톡톡오늘 2021. 12. 17.

아시리아에 대해 살펴보다 보니 아시리아인들이 지금도 존재하는지 궁금해지더군요. 아시리아와 시리아는 다른 민족인데요 오랜 기간 두 민족을 구분 없이 부르다가 최근에 들어 민족 정체성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아직까지도 아시리아 사람들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시리아에 40만 명 이라크에 30만 명 그 외 이란과 터키에도 2만여 명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시리아 인들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서 오랜 기간 박해를 받아왔는데요 몽골 통치 기간과 무슬림 통치 기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고 이후 많은 아시리아인들이 더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위해 중동을 떠나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독일, 미국, 호주 등에 아시리아 디아스포라(Assyrian Diaspora)가 있으며 전 세계에 퍼져있는 인구까지 합치면 400만 명의 아시리아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미국의 안드레 아가시라는 유명한 테니스 선수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아르메니아계 아시리아인이라고 합니다. 아시리아인에 대한 TMI는 여기까지만 하고 이제 다음 유물들을 이어서 보시죠.

 

1부에서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궁전 부조가 있던 7번 방에서 6번 방으로 가는 방향에는 10번 방으로 넘어가는 작은 통로가 하나 있는데요 그리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10번 방의 이름은 ‘아시리아: 사자 사냥’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아슈르바니팔의 부조가 나오는데 그는 성서에서는 산헤립이라고 불리는 센나케리브의 손자이며 니네베 최초의 체계적인 도서관을 세운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니네베라는 도시는 오랜 기간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다가 1880년대에 발굴되면서 거대한 아시리아 문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왼쪽 벽을 따라 안으로 쭉 들어가면 아시리아 왕이 사자를 사냥하는 부조가 보이는데요 사자가 우리에서 나오는 모습이 나옵니다. 앞서 나온 사자는 나오자마자 활에 맞은 것으로 보입니다.

 

계속해서 보시면 사냥당하는 사자들이 나오는데요 지금은 아시아에서 사자들이 멸종되고 없지만 고대에는 바바리 사자라 불리는 개체들이 북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 주변, 터키, 남부 유럽, 인도 북부까지 넓은 지역에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이 벽화를 보니 사자들이 멸종된 이유를 알겠네요. 그런데 이런 사냥하는 모습을 벽에 조각해놓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그 이유는 다른 지역에서 온 고관들에게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왕의 용맹한 모습을 보여줌으로 그들에게서 복종심을 이끌어 내었던 거 같습니다.

 

이 부조는 10번 방 벽을 따라가다 보면 발견할 수 있을 텐데요 성서에 나오는 센나케리브(산헤립)가 유대 지역의 라기스(Lachish)라는 도시를 공격하는 모습입니다. 이 벽화에서는 오른쪽 위에 라기스라는 도시가 보이는데요 이 도시는 80,000㎡(잠실 주경기장 건축면적 : 58,551㎡)의 크기로 높은 둔덕 위에 있고 성벽과 감시탑이 있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전쟁 당시에 아시리아 군은 창을 이용해서 공격하는 근접 전투 병력과 궁수도 있었고 돌을 던지는 용병도 고용되었던 반면에 유대인 군대는 대부분 지역 민병대 성격의 군인들과 용병들이었고 전문적인 군사 조직력이 떨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부조를 보면 마치 1세기에 있었던 전쟁 가운데 로마군이 마사다를 점령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경사로를 지어서 성벽을 넘어가는 방식으로 전쟁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의 라기스(Tel Lachish)에 있는 유적지에는 아시리아 포위망의 흔적이 남은 유적이 있는데요 라기스를 발굴해보니 아시리아 인들이 라기스 정문 동쪽으로 성벽 높이까지 돌과 흙 경사로를 건설해서 군인들이 경사로를 통해 도시를 습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지역을 계속 발굴해보니 인근 동굴 중 한 곳에서는 약 1,500개의 두개골과 경사로와 성벽 위에 있던 것과 같은 화살촉이 발견되어서 치열한 전투 현장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부조를 자세히 보면 뿔이 있는 양의 머리를 한 공성퇴도 관찰할 수 있는데요 이 공성퇴의 이름은 말 그대로 ‘숫양’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리고 성벽 위에서 떨어뜨리는 바위나 횃불로부터 공성퇴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보호막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방어하는 유대 군대는 아시리아군에 밀려나서 후퇴하고 일부는 도망치려 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부조에서는 유대인 포로들을 사로잡아서 동물들과 함께 유배지로 전리품과 함께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 포로들은 덩굴과 무화과나무, 올리브 나무를 배경으로 한 바위투성이의 길을 행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손가락으로 지금 화면을 오른쪽으로 조금만 이동해보시면 아시리아에 대한 반란을 주도한 것으로 여겨지는 관리들은 더 가혹한 대우를 받게 되는 장면이 있는데 오른쪽 아랫부분을 보면 그 가운데 두 명은 산 채로 살해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부조에서는 포로들이 센나케리브(산헤립)의 웅장한 왕좌 앞으로 끌려오고 몇몇은 처형되는 모습을 지켜고 있습니다. 그의 뒤에는 천막이 있고 그의 전차 역시 보이고 있으며 경호하는 군인들이 주변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왕의 얼굴은 아마도 니네베가 멸망될 당시에 적군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베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2부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라기스 전투의 부조에서는 포위를 진행할 당시의 아시리아 군의 베이스캠프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가운데를 통과하는 도로가 있는 요새로 되어 있습니다. 천막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두 명의 사제가 병거 앞에서 의식을 행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이제 센나케리브(산헤립)는 이 라기스에 진을 치고 랍사크(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내게 되는데요 그의 아카드어 이름의 의미를 생각해볼 때 아마도 ‘술잔 올리는 시종장’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고대에는 술잔 올리는 시종장이 높은 고위 관리였음을 생각할 때 신임하는 사람을 예루살렘으로 파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부 3부에서 나오는 부조는 니네베 궁전에 있던 부조인데요 오랜기간 니네베라는 도시가 존재했는지 조차 확인하지 못하다 1849 영국의 오스틴 헨리 라야드(Austen Henry Layard) 쿠윤지크 둔덕(Tell kuyunjiq)에서 71개의 방과 거대한 조각들이 있는 센나케리브의 궁전을 발견하였습니다.  궁전에는 유명한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에서 2 2 개의 석고 점토판도 발굴되었느데요 일부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으로도 갔습니다. 이렇게 발굴된 지금 보신 유물들이 영국으로 간건 어쩌면 다행인데요 최근에 이라크에서 IS(이슬람 국가) 이슬람 문화가 아닌 것들을 파괴하는 종교 보호구역 파괴 운동을 벌여서 여기 있는 발굴품들을 대부분 파괴하였습니다. 문화재 약탈로 과거에 그렇게 비난을 받던 서구 열강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네요. 다음 3부에서 이어지는 부조를 함께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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