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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투어 / 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 아시리아편 3부

by 톡톡오늘 2021. 12. 18.

요즘에는 방송에서 재능 있는 젊은 사람들이 일찍부터 음악을 하거나 노래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재능이 있다 한들 저명한 교수나 음악가의 추천을 받지 못한다면 꽃을 피우기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재능만 있다면 배경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인정받는 사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고대 사회가 지금처럼 재능 있는 사람을 더 우대해주는 사회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 고대 아시리아 문명에 대해 좀 더 알아보시죠.

 

메소포타미아 사회에서는 음악가를 왕과 성직자 다음의 지위에 위치할 만큼 중요한 위치였는데요 아시리아 인들은 정복 전쟁을 하면서 대학살을 했지만 음악가들은 예외로 살려두어서 전리품과 함께 본국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지금 보시는 센나케리브(산헤립) 궁전 조각에서는 포로로 끌고가는 음악가들로 하프하고 비슷한 사현금(리라:Lyres)이라는 현악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요 이들이 입은 옷 스타일로 봤을 때 라기스(Lachish)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인 것으로 보여줍니다. 이 사람들은 레바논 혹은 더 시리아 쪽 사람들로 보이는데요 아시리아 사회에서 종교의식에 음악이 꼭 필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부조를 보면 돌팔매가 고대 전쟁에서 사용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돌팔매 투석기를 사용하는 방법은 끈 한쪽을 손목이나 손가락 둘레에 묶고서 다른 끝은 손바닦으로 쥐고 파우치에 돌멩이를 걸어서 원을 그리면서 돌려주다가 맞추고자 하는 방향으로 끈을 놓아주면 돌이 앞으로 날아갔을 것입니다. 고대 돌팔매를 복원해보니 현대의 자동차 문도 구멍이 뚫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이었다고 합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투석 장비도 비교적 저렴한 데다가 돌도 어디에서든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고대에는 이런 돌팔매를 사용하는 군대를 많이 양성하였는데요 전쟁을 대비해서 훈련을 많이 하기 때문에 위력도 대단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10번 방 가장 끝에 벽을 타고 돌아 나가면 새로운 장소가 보이실 텐데요 여기에서도 1부에서 보았던 라마수(날개 달린 인면 황소) 석상이 보이실 겁니다. 바깥쪽을 바라보는 오른쪽 라마수 석상을 끼고 돌아보면 이 라마수 석상 위 아래에 있었던 비문이 보입니다. 이 비문에서는 2부에서 있었던 라기스 전투 이후에 히스기야가 센나케리브(산헤립)에게 조공을 바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성서에 나오는 조공 액수와 비문의 액수에는 차이가 좀 있는데요 성서에는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전체 가치를 오늘날로 환산하면 약 950만 달러[약 100억원])를 냈다고 알려주고 비문에서는 금 30달란트, 은 800달란트를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히스기야가 보낸 금액도 적지않은 금액인데요 왜 다르게 되어 있을까요? 고대 세계 왕들은 자신의 업적을 최대한 드높이기 위해서 과장하는 일이 관례였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정복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기에 그대로 니네베로 돌아갔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사실입니다.

 

비문을 보신 다음 바로 옆에는 라마수(날개 달린 인면 황소)석상이 있습니다. 라마수(Lamassu)는 아시리아의 보호 신으로 인간의 머리와 황소 혹은 사자의 몸과 새의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세두(Shedu)라고도 불리는데요 궁궐 입구에 이처럼 라마수 한 쌍을 세워 두었습니다. 이 라마수는 사르곤 2세(Sargon II)의 라마수인데요 적어도 7개의 라마수석상과 사자를 안고 있는 두 명의 영웅들이 왕국 입구를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이 사르곤 왕은 성서 이사야 20:1에 단 한번 언급되어 있는데요 성서 비평가들은 사르곤이 아시리아의 기록이나 유물로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에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이거나 건축가였다고 주장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843년 이후에 니네베에서 북동쪽으로 20킬로미터 떨어진 코르사바드 마을에서 사르곤의 궁전과 왕실 연대기 비문이 발견되었고 여기에 두르샤루킨(Dur-Sharrukin)이라는 도시를 건설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 사르곤이 아시리아의 가장 유명한 왕들 가운데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제 오른쪽 라마수 석상의 옆구리로 가보겠습니다. 뒷다리의 두 발굽 사이로 최대한 확대해서 보시면 다음과 같은 긁힌 자국이 희미하게 보이실 텐데요 여기 자국은 고대 우르에 있던 보드 게임판 하고 비슷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마치 동양에서 고대부터 즐기던 바둑판이나 장기판과 같은 게임판인데요. 주사위와 게임 조각들을 사용해서 즐길 수 있는 게임이었습니다. 아시리아 군인들은 정복 전쟁이 없을 때는 왕궁에서 경비근무를 해야 했는데 경비를 서는 동안 게임을 즐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근엄하게 서있는 라마수 석상 옆에서 땡땡이치고 게임을 즐기는 경비병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겠습니다.

 

이 부조의 왼쪽은 사르곤 2세인데요 인상을 보니 높은 코를 가졌고 칼을 옆구리에 차고 지팡이를 짚고 있고 있습니다. 풍성한 옷을 입고서 오른쪽의 고위 고관과 마주하고 있는데요 오른쪽에 있는 사람 역시 화려한 머리띠와 옷차림을 봤을 때 왕세자인 센나케리브(산헤립)로 확인됩니다. 이 조각은 인체구조를 정밀하게 조각하였는데요 유연한 손과 팔의 근육을 잘 강조하였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배경에서 도드라진 카리스마 있는 얼굴선과 고상한 머릿결로 차분한 표정을 보여주고 있고 사르곤 왕의 오른쪽 어깨가 두드러진 모습이 과장된 느낌을 보여줍니다. 조각을 통해서 머리카락과 수염을 하나하나 곱슬곱슬하게 새기고 드레스 자수와 장신구를 꼼꼼하게 조각하고 보석류를 섬세하게 다듬은 것을 봤을 때 왕과 고위 관료, 관리들의 모습에 차이점을 두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울러 지금 보시는 로제트(Rosette) 양식의 팔찌는 왕과 궁궐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들만 착용하였습니다.

 

이제 바로 옆에 그리스 조각상들이 보이는 23번 방을 지나 오른쪽의 8번 방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8번 방은 ‘아시리아 님루드’라는 방인데요 님루드는 아시리아의 주요 도시였던 이름입니다. 이 도시는 오랜 기간 아시리아의 수도이기도 했는데요 고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 방에서도 여러 부조들이 보이는데요 가운데 세 개의 큰 기둥 가운데 가장 오른쪽에 보이는 기둥에 한 인물의 부조가 보이는데요 이 인물은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Tiglath-pileser III)입니다. 그는 신 아시리아 제국의 창시자로 여겨지고 있는데요 아시리아 제국의 첫 상비군을 창설하고 근동의 많은 부분을 정복하였습니다. 오늘날 알려진 아시리아 제국의 대부분의 지역을 정복했던 가장 성공했던 군 지휘관 중 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 왕도 성서에서 등장하는데요 열왕기하 16:7에서 디글랏빌레셀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며 역대기상 5:26에서는 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최초의 아시리아 왕인데요 그의 통치 기간 동안의 비문에는 북쪽 이스라엘 왕국을 정복하고 그들이 바친 조공까지 언급되어 있습니다.

 

아시리아 왕들 가운데 성서 역사에 언급되어 있는 왕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아무래도 여러 사건들과 연루되어 있어서 그러한 듯합니다. 이제 이어지는 4부를 통해서 아시리아의 다른 다양한 유물들을 함께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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