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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투어 / 국립중앙박물관 - 선사·고대관 2부(신석기 시대)

by 톡톡오늘 2022. 7. 22.

인류가 퍼져 나가면서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넘어가게 되는데요 그들은 각자 원하는 지역에서 정착을 시작하면서 구석기시대의 이동 생활에서 신석기시대의 정착 생활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채집, 수렵에서 본격적인 농경사회로 넘어가면서 사용하는 도구도 조금씩 바뀌게 되었습니다. 신석기시대부터는 원시적인 옷이나 그물을 제작하면서 경제활동이 시작되고 빗살무늬 토기가 제작되었으며 샤머니즘이나 토테미즘이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신석기 주요 유물들을 하나씩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강가나 바닷가에서 고기잡이에 사용된 다양한 도구들입니다. 오른쪽에 돌작살은 강원도 고성에서, 아래 낚시 도구들은 부산 동삼동에서 가운데 뼈 작살은 전남 완도에서 왼쪽에 위에 그물추는 강원도 양양과 서울 암사동에서 각각 출토되었습니다. 빙하기가 끝나가면서 점차 바닷물이 들어오고 강이 흐르면서 큰 물고기를 잡는 도구들이 발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도구들은 심지어 고래나 상어와 같이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도구들이었습니다.

이 전시물은 갈판과 갈돌 즉 초기형 멧돌입니다. 이러한 맷돌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나 이집트 지역에서 사용하던 맷돌과 상당히 유사하게 생겼는데요 이러한 맷돌을 이용해서 도토리와 같은 견과류를 빻거나 곡물의 껍질을 벗기는 데 사용되었는데요 이러한 형태의 맷돌은 돌가루가 함께 갈렸기 때문에 아마 음식을 먹을 때 그러한 돌가루가 흔하게 씹히거나 함께 먹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음식을 편안하게 갈아서 먹는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네요.

지금의 전시물은 서울 암사동, 경북 울진 죽변, 부산 범방동, 경북 청도 오진리 등에서 발굴된 유물입니다. 본격적인 농경 사회가 시작되면서 현재 보이는 도구들과 같은 괭이나 낫을 사용해서 땅을 일구고 농작물을 생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석기 시대에는 식물 채집도 하나의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는데요 도토리나 가래, 살구와 같은 다양한 야생 식물들을 채집해서 먹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가락바퀴라 해서 옷감을 만드는 도구입니다. 1933년 경성대학 일본인 학자인 요코야마 쇼자부로가 함북 경성을 답사하여 유물을 수습하였는데요 흙으로 빚어 구운것으로 적갈색 연질입니다. 가운데가 볼록 튀어나온 주판알 모양으로 가운데에는 지름 0.5cm 구멍이 뚫려 있었고 4개 중 하나는 부챗살 모양의 줄무늬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도구들을 이용해서 신석기에는 옷을 지어 입기 시작했는데요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실 뽑는 도구입니다. 가운데 보이는 구멍에 축을 꽂아 회전력을 이용해서 실을 꼬아 뽑는 도구인데요 이렇게 뽑아낸 실로 가죽을 꿰매어 입거나 간단한 형태의 옷감을 만들어 입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토기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곡식을 저장하고 토기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를 하기 시작하는데요 신석기의 대표적인 토기가 빗살무늬 토기입니다. 토기 표면에 나뭇가지나 동물의 뼈를 이용해서 빗살을 새겨놓았기에 빗살무늬 토기라 부르는데요 이렇게 빗살을 넣은 이유는 토기가 좀더 단단해지게 하기 위함도 있지만 비나 햇빛을 상징하는 무늬를 넣어서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대부분 토기들의 바닥이 뾰족하게 되어 있는데요 당시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 대부분 모래나 진흙으로 이루어진 무른 바닥이었기에 뾰족하게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산지나 구릉지에서 발견된 토기는 바닥이 평평하게 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토기들은 보이는 것처럼 묻어두고 사용하기 위해 바닥이 뾰족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보이는 큰 토기는 신석기 시대에 사용되던 관으로 경남 진주 상촌리에서 출토된 옹관이라고도 부르는 무덤입니다. 보통은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묻는 경우가 많지만 뼈만 추려서 이처럼 토기 등에 넣기도 했습니다. 그 옆에 있는 액세서리는 동물 이빨로 만든 발찌이고 아래에는 도끼날도 있네요. 발찌는 경남 통영 연대에서 발굴되었습니다. 무덤에는 이러한 다양한 석기나 사용했던 물건들을 함께 넣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 가운데 가운데 탈처럼 눈하고 입이 뚫려 있는 조가비가 보이는데요 부산 영도구 동삼동에서 출토된 유물입니다. 고대인들은 자연환경의 변화에 많은 두려움과 공포를 가지고 있었기에 주술적인 행위를 통해서 이를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이 조가비 탈은 실제로 착용했다기보다는 마을의 공동의식이나 축제 때 의식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신석기시대부터 샤머니즘이나 토테미즘이 발달하면서 종교가 발전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이제 다음에 청동기·고조선편을 통해 국가의 틀이 본격적으로 생기는 과정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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