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알려진 한반도를 거점으로 했던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유물을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고조선은 1392년 이성계가 세운 조선 왕조와 같은 국호입니다. 하지만 후대에 세워진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옛 고(古)’자를 붙여서 고조선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조선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기에 발견된 몇몇 유물들을 통해서 그저 유추해보는 수준에 가까운데요 주된 기록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신화를 바탕으로 고대 한반도에 국가적 기틀이 있었던 정도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고조선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고조선 활동 영역이 대부분 북한과 중국 지역이라는 점과 단편적인 기록으로 인해서 고고학적인 연구에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발굴된 여러 유물들을 토대로 고조선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남 함평 초포리 유적에서 발굴되었고 주로 제사장이 사용하던 물건입니다. 청동기는 귀하고 만들기 쉽지 않기 대문에 청동기 시대라 부르지만 농사 지을 때는 돌로 만든 도구를 사용했고 주로 권력자만 청동 거울, 청동 방울, 청동 검을 사용했습니다. 고조선에서 제사장은 일반적인 제사직의 의미는 아니었는데요 이를테면 주류 학계는 고조선 신화에 나오는 ‘단군’의 단을 ‘박달나무 단’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여러 문헌에서는 ‘제단 단’을 사용하기도 하며 제사와 관련된 권위를 가진 직분으로 알려져 있고 왕검을 정치 지도자로의 의미로 보는 해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고조선의 대표적인 동검인 ‘비파형 동검’입니다. 이러한 동검이 발견된 장소가 주로 중국 랴오닝성에서 발견되었다 해서 요령식 동검, 만주식 동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동검을 잘 보면 모양이 아래쪽 폭이 넓고 둥글게 생겼는데요 이 모양이 현악기 비파(현대의 기타)를 닮았다고 해서 비파형 동검이라 불립니다. 이 동검은 대륙에서 사용하던 중국식 동검과 큰 차이점이 있는데요 중국식 동검(도씨검)은 검신과 칼자루를 하나로 함께 만드는 반면 비파형 동검은 검신과 칼자루를 따로 만들어 조합하는 방식에다 칼 끝에는 자루 속에 박히는 경부 부분에 홈이 새겨져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사용되던 동검은 크게 비파형 동검과 세형동검으로 다시 나뉘게 되는데요 비파형 동검에 비해 폭이 좁고 가는 세형동검은 고조선 후기나 철기 시대에 주조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전시물은 고조선 대표 토기인 미송리식 토기입니다. 평안북도 의주 미송리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해서 미송리식 토기라 부르는데요 고조선의 영역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 유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토기의 모양은 납작한 바닥에서 목 쪽으로 점차 벌어지는 형태의 통통한 몸체에 띠 모양의 손잡이가 마주 보게 달려 있는 게 특징입니다. 기원전 6-5세기 경의 청천강 인근에 살던 주민들이 사용하기 시작하여 요령(랴오닝성) 지역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토기입니다. 물론 이러한 토기가 다른 여러 지역에서도 생산되었기에 고조선이 이러한 토기를 생산한 여러 지역 가운데 하나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조금 전에 한반도에서 사용되던 대표 동검으로 비파형 동검과 세형동검을 이야기했는데요 기원전 5세기 무렵에 청천강 이남을 중심으로 한국식 동검 즉 세형동검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동검 역시 검신과 칼자루를 따로 만들었지만 조금 전의 비파형 동검과는 다르게 검신이 직석화되고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에 마디가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고조선 후기부터는 여러 공구나 거울 및 의기들이 많이 출토되기 시작하는데요 제련 기술의 발전으로 대량생산이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세형동검은 지금의 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출토되기 시작했으며 가운데 잔무늬거울도 함께 출토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잔무늬거울은 기하학적인 무늬가 섬세하게 도안되어 있는데요 현재까지 20여 점 출토되어 중국의 거울과 다른 독자적인 문화가 존재했음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러한 고조선 시대의 물건들은 돌무지널 무덤이나 움무덤 등에서 검은간토기, 덧띠 토기, 옥, 돌화살촉 등과 함께 출토되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대전 괴정동에서 발견된 유물들인데요 나팔 모양의 청동기는 말머리를 장식하는 도구이고 가운데 방패모양과 어깨뼈 모양의 청동기는 도끼와 손 칼집의 장식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청동기 유물에는 사슴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요 풍요와 번성을 의미하는 그림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베를린 박물관 섬에서 페르가몬 박물관의 메디아-페르시아편에 이러한 사슴 모양의 토기들이 소개되어 있는데요 그 지역의 사슴 모양의 유물도 같은 의미로 만들어졌음을 생각해 보게 되네요. 이러한 유물들이 청동 무기와 공구, 의기들과 함께 대량으로 출토되어서 고조선이 한반도 서남부 지역으로 진출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 편을 통해서 고조선에 대해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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