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오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청동으로 만든 제품을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청동기 시대에도 청동은 매우 희귀하고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제품이었습니다. 그저 청동이라는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한 시대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요 마치 지금을 우주여행 시대라 해서 58억 5000만 원짜리 우주여행을 누구나 갈 수 있지 않다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겠네요. 청동은 당시에도 귀한 물품이라 한정된 특권층들의 도구와 무기로 사용되었고 특권층의 일상용품이었으며 일반 백성들은 대부분 토기와 석기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점차 보편화되기 시작했는데요 여러 모양으로 주조하기가 편했기에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을 950℃로 녹여서 제련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철의 녹는점이 1,560℃였기에 제련 기술의 한계로 인해 부족한 매장량에도 불구하고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청동기 시대에 도구와 무기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청동기 관에 들어오자마자 가운데 보이는 전시물은 대전 괴정동에서 출토된 청동으로 만든 의식용 기구입니다. 앞면에는 솟대가 있고 뒷면에는 농경 의례를 표현해서 생산과 풍요를 비는 의식을 할 때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마도 제사를 주관할 때 주술 의식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요 고대에는 해나 별, 번개 등이 경외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자연 숭배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기하학적인 문양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앞면에는 새가 나뭇가지에 앉은 모습이 마치 농촌 마을의 솟대를 연상하게 하고 뒷면에는 사람이 항아리에 무언가를 담고 있거나 머리에 긴 깃이 달린 모자를 쓴 사람이 따비로 밭을 가는 모습이 새겨져 있으며 벌거벗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밭고랑 아래에는 또 한 사람이 괭이를 치켜든 장면을 묘사했습니다. 현재 보이는 부분은 앞면의 모습입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농경을 바탕으로 정착 생활이 본격화되면서 큰 규모의 마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주로 움집 생활을 하였습니다. 집터에는 화덕과 기둥, 저장 구덩이와 같은 흔적이 발견되었고 면적이 큰 장방형에서 작은 원형, 방형으로 변하게 되는데요 마을 유적에는 논과 밭, 물길, 우물, 마을 전체를 두른 도랑과 울타리 등이 발견되면서 본격적인 농경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됩니다. 왼쪽 아래에 보이는 도끼와 도낏자루는 충남 논산 마전리에서 발굴된 것과 경기도 수원에서 구입한 것입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 유물 가운데 하나인 돌칼입니다. 기본적으로는 흰색 사암으로 만든 경우가 많은데요 여러 무덤에 함께 묻혀 있었거나 주거지에서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무게로 보나 길이가 40cm나 되는 대형 검이었던 것으로 보나 여러모로 실용적으로 보이지만은 않은데요 실제로 손잡이 부분이 과장되어 있어서 장식용 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특정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는 물품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 시기부터 수로가 굴착되고 거대한 고인돌이 조성되는 등 마을의 단결과 공동 노동이 시작되었는데요 주변 마을과의 갈등을 조정하는 인물이 등장하고 지배 계층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청동칼과 돌칼은 이러한 지배 계층의 상징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물건으로 보입니다.
전시물 위에 소개처럼 별 모양과 달 모양 도끼들인데요 함북 회령과 종성에서 출토된 것들이고 일본의 오사카 긴타로 씨가 기증한 것(13, 14번)들이 일부 있습니다. 이러한 별과 달 모양 도끼 역시 실용적인 목적으로 제작되었다기보다는 지도자들의 권위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는데요 가운데 자루를 끼우기 위한 구멍이 있어서 막대 자루를 꽂아서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도끼는 주로 지휘봉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청동기 시대에 농경과 함께 수렵과 어로 등 생업 활동 역시 여전히 행해지고 있었으며 강원도 춘천 천천리 유적지에서는 나무로 만든 활과 화살대, 돌화살촉 등이 출토되기도 하였습니다. 가운데 아래쪽에 보면 실제 발견된 모습들인데요 화살촉 11점이 화살대와 함께 탄화된 채로 발굴되었습니다. 또한 동물을 잡기 위해 땅을 파고 내부에 뾰족한 막대를 꽂아 만든 함정도 확인되었는데요 청동기 시대에 새롭게 발견된 수렵 방식이었습니다.
대량의 토기 전시물은 청동기 시대에 한반도와 요동반도 일대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민무늬 토기입니다. 빗살무늬 토기의 뒤를 잇는 유물인데요 이 토기에는 표면에 아무런 무늬가 존재하지 않기에 민무늬라고 부릅니다. 이 토기는 부족장과 같은 지배 계층에서부터 평민까지 널리 사용되던 물건이었으며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 남쪽으로 전파되기 시작했고 기원전 3-4세기 철기 문화가 시작되면서 서서히 사라져 가게 됩니다. 이러한 토기에는 주로 곡식을 담거나 저장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빗살무늬 토기와 민무늬 토기는 인이 박히게 들어서 어디선가 들어봤던 그 토기 종류가 맞습니다.
이제 몇일 쉬었다가 고조선 시대로 넘어가서 한반도에 세워졌던 최초의 고대 국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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