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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투어 / 국립중앙박물관 - 고조선 2부

by 톡톡오늘 2022. 7. 27.

고조선에 대한 기록은 자체적인 기록보다는 중국 역사 기록에 더 많이 등장합니다. 기원전 7세기부터 조금씩 중국 기록에 언급되다가 기원전 4세기경의 서한 말 유향이 저술한 전국책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는데요 연나라와 맞서는 국가로서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고조선 자체의 기록이 없는 데다 건국신화로 알려진 단군 신화도 고조선 멸망 후 지어진 창작물인지 고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이야기인지도 알 수가 없는 데다 건국과 관련해서도 여러 버전의 내용이 존재하기에 앞으로도 명확한 기록이 추가로 발견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고조선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내기는 어려울 전망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여하 지간에 고조선에 대한 다른 유물들을 둘러보겠습니다.

고조선은 19세기 이전까지의 기자조선까지 3단계로 나뉘다가 지금은 다시 단군조선, 위만조선 이렇게 둘로 나뉘게 되는데요 단군조선이 이전까지 청동기 문화였다면 위만조선 시대 전후로 철기문화에 본격적으로 접어든 시기였습니다. 기원전 202년경 중국 춘추전국시대 연나라 출신 사람으로 연나라 왕 노관이 한나라 유방으로부터 모반을 시도하다 실패해서 도망할 때 연나라의 위만이라는 인물 역시 1,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고조선에 망명하게 됩니다. 이때 고조선 안에서 계속 세력을 키우다가 기원전 194년경 자신을 받아준 준왕을 왕검성에서 몰아내고 스스로 조선의 군주가 되어 위만조선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이 당시부터 철기 문화를 본격적으로 수용했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 혼란스러운 중국 사정으로 중국 유민들이 고조선에 유입되면서 많은 발전을 이룬 것도 사실입니다. 이 시기부터 천청강 이남으로 한국식 동검 문화가 발전하게 되고 투겁창, 꺽창 등 새로운 무기가 발전하게 되었으며 청동기 제작 기술도 최구 수준에 이르게 되어 잔무늬 거울이 제작되는 등 큰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반면 국경을 마주한 연나라와는 계속 대립관계에 있게 되었는데요 발전한 철기 문화가 남쪽으로 점차 퍼져나가는 시기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손칼 모양 동전 앞면에 ‘명(明)’자가 새겨져 있어서 명도전이라고 부르는 화폐입니다. 이 화폐는 춘추전국시대에 연나라 화폐로 사용되었으며 한반도와 요동에서도 많이 발견되어 고조선의 화폐로도 사용되었다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국경을 마주한 고조선과 교역을 하면서 함께 사용된 화폐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현재의 달러$$같은 개념) 이 명도전은 일본에서도 발견되어서 국제적으로 유통되고 사용되던 화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것처럼 대개 수십 매에서 수천 매에 이르기까지 나무 상자, 단지나 항아리에 담겨 구덩이에 묻힌 채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혹시 이 돈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저도 모르는데요 이 돈을 묻은 사람은 어떤 급박한 상황으로 인해서 묻었을지 모르지만죽은 뒤에는 사용할 수 없으니 아무소용없네요. 한반도에서는 평북 영변 세죽리와 자강도 전천군 전천읍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평양 상리에서 1933년에 출토된 유물인데요 무덤 속에 있던 수레 난간을 장식하는 부속품입니다. 고조선 시대에는 아래 권총 모양으로 된 동기와 삿갓 모양으로 된 동기, 을(乙)자 모양의 동기 등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형태의 부속구들인데요 마차는 보통 하나의 끌채에 두 마리의 말이 끄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고 단지 수레 앉는 자리 둘레에 세운 기둥 장식으로 추정하는데요 이러한 동기는 내부가 비어있는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장식품에는 목제 자루가 함께 출토되기도 하였습니다.

고조선은 철기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생산력이 늘어나 경제가 발전하고 이에 걸맞은 통치 조직을 확립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시기 한반도 남부(현재의 남한 지역)에는 진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였는데요 고조선은 중국과 진이라는 나라 사이에서 중계 무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반도 서남부 지역 있었던 진나라는 전라북도 장수 남양리, 충청남도 당진 소소리 유적 등을 통해 볼 때 최고 수준의 청동기를 제작하고 있었고 철기 역시 가장 먼저 받아들이면서 서남부 지역이 진의 중심 지역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진은 지금 보이는 얇은 동검과 같은 한국식 세형동검을 사용한 독자적인 문화권이었고 가야와 같은 연맹 국가였을 가능성에 대해서 추정하기도 합니다.

중국 대륙을 통일한 한나라는 이제 주변국들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는데요 한무제 유철이 제위에 오르면서 흉노 정벌을 시작으로 남월과 고조선도 원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과 같은 유무들은 중계무역으로 성장한 고조선을 보여주는데요 고조선 역시 진번과 임둔을 정복하면서 한나라와의 일전을 앞두게 됩니다. 한나라와의 전쟁이 벌어진 단초는 고조선의 태도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파견된 한나라의 외교관인 섭하가 조선의 비왕을 살해하고 돌아오는데 한나라는 섭하를 오히려 요동 도위에 부임시키면서 고조선을 자극하였고 고조선에서 섭하가 있는 요동과의 전투를 벌여 섭하를 살해하고 결국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고조선의 험난한 지형을 이용해서 한나라의 수륙 양군의 공격을 잘 저지하였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1년여간의 항전 끝에 기원전 108년에 고조선 내부에서의 우거왕 시해와 함께 멸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에서는 고조선식 나무곽무덤이 계속 발견되어서 고조선 지배 세력들이 계속해서 기반을 두고 있었고 남쪽으로 유민들이 유입되면서 한반도 남부 지역으로 고조선 문화가 유입되게 됩니다.

고조선은 멸망되었지만 유민들이 부여에 유입되거나 동예, 옥저와 같은 지역이 독립하게 되고 일부는 신라 건국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요 이후에 있게 될 원삼국시대(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로 이어지게 되는데요 다음 전시관에서 이 지역들의 유물들을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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