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서 통일신라 전시관으로 가기 위해서는 중앙 홀로 나와서 반대편 전시관으로 넘어가야 하는데요 신라관과 분리해서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통일신라는 기원 676년부터 939년까지 221년간 존재했던 국가인데요 최근 들어서는 고구려의 핵심적인 지역을 발해에 의해 점유되고 있었기에 통일신라라는 명칭보다는 후기신라와 발해를 위시한 남북국시대라 부르기도 합니다. 통일신라의 인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기원 780(추정)-846년까지의 인물인 장보고가 있는데요 어린 시절에 당나라로 넘어가서 벼슬을 하다 신라로 다시 돌아와 청해진(완도)에서 당나라와 신라, 왜 사이의 해상무역을 장악하면서 큰 부와 권력을 얻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일본 하카타와 중국 적산, 초주, 연수향, 양주, 영파, 광주 등에 신라방이나 신라소와 같은 무역사무소를 설치하고 신라인들을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시키기도 했으며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신라 왕실에도 지원을 약속했을 정도로 큰 재산을 축척하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이집트에서 나온 1200년 전의 책에서는 중국 동쪽에 있는 신라를 소개하면서 황금이 풍부해서 개도 금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곳이라고 소개한다니 당시 신라의 명성이 중동 아라비아까지 퍼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통일신라 당시의 유물을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의 전시물은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사천왕 부조입니다. 사천왕은 고대 인도에서 숭상했던 귀신들의 왕이었는데요 불교를 받아들이고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경주 사천왕사에서 발견된 녹유신장상인데요 탑의 기단을 장식했던 것이며 기단 네 면의 계단을 중심으로 좌우 3개씩 총 24개가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지국천왕, 광목천왕, 중장천왕, 다문천왕이 동서남북의 방위를 지키는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런 다신교의 사상은 고대 그리스, 로마, 이집트, 인도 종교의 전형적인 특징인데요 태양이나 비, 불과 같은 자연물을 신격화하기도 하고 자연물 외에도 동물이나 식물, 영웅을 신격화하기도 합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왕경 귀족의 사택에서 사용되었을 여러 유물들입니다. 통일신라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간 세력은 왕경(경주)의 진골 귀족이었는데요 왕경에는 17만 8,936호가 살았고, 금입택이 30여 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금입택은 말 그대로 황금을 씌운 집이라는 의미인데요 거대한 집 전체를 통째로 황금 금박을 씌웠으며 저택마다 각각의 고유한 이름을 정했습니다. 상상이 잘 안 간다면 일본의 금각사나 인도의 암리차르 황금사원이나 미얀마의 쉐다곤 파고다 등의 건물이 그렇게 금박으로 씌웠는데요 최근인 2022년 1월 6일에는 금입택의 파편으로 추정되는 유물 50개가 경주시에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각종 황금과 금동판 장식들을 계단 전체에 고정하기 위해 27개의 못을 박은 흔적이 있어서 계단 받침돌까지 화려하게 황금으로 꾸민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금입택은 사치스러운 느낌을 주기에 유교의 영향을 받은 조선왕조에서는 금입택을 짓지 않게 되었습니다. 금입택의 주인은 왕권에 비견될만한 유력한 진골 귀족이었는데요 경주 왕경 유적과 안압지에서 나온 많은 유물은 이러한 진골 귀족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금과 은으로 장식한 생활용품과 녹유기와는 당시 진골 귀족의 호화로운 생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로 칼과 발걸이, 재갈, 자물쇠, 꾸미개 등이 보이는데요 통일신라 당시 제사 유물입니다. 통일신라의 지방 사회는 9주 5소경이라는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서 중앙의 행정력이 각 지방에 고르게 미치게 되는데요 지방 사회의 행정은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와 토착 촌주의 협력 아래 이루어졌고, 문자의 활용과 도로와 역의 정비를 통해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왕경의 문화가 지방에까지 이식되어 일부 지방 유력자는 왕경 귀족과 비슷한 문화 수준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통일 신라 시대의 도장인데요 도장 자체가 고대에는 일반 서민이나 천민을 사용할 수 없는 도구였습니다. 지방자치 제도 안에서 정책을 승인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기에 자치적으로 강한 권력을 유지하고 있어야만 했는데요 이러한 도장이 있다는 것 자체가 통일신라 말기에 독자적인 세력이 등장했음을 보여줍니다. 이 지방 세력들은 주로 변경의 군진이나 상업과 대외 교역이 발달한 곳에서 크게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곳으로 장보고가 활동한 남해의 청해진 지역과 당과의 교역로였던 북방의 패강진 지역인데요 황해도 평산에서 출토된 유물은 변경의 군전에서 성장한 지방 세력의 모습을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한 쌍의 전시물은 금동 용머리 장식인데요 경주 안압지에서 발굴되었습니다. 하나의 틀에서 주조한 것처럼 보이지만 불거져 나온 눈이나 벌름거리는 것 같은 코의 모습과 날카로운 송곳니의 모습은 상상 속의 동물인 용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였고 용의 비늘과 갈기까지 매우 섬세하게 묘사하였습니다. 머리의 뿔과 입 안의 혀는 따로 만들어져서 뿔은 구멍에 끼워져 있고 혀는 못으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의자의 팔걸이에 장식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용은 한반도에 존재했던 왕조에서 왕으로 상징되었으며 신라의 문무왕이 죽을 때도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말을 남긴 설화를 생각했을 때 상서로운 동물로 여겼습니다.
이 전시물은 기원 9-10세기경의 통일신라 시대의 발걸이인데요 1935년 황해도 평산군에 위치한 신라 고분에서 출토되어서 1936년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이관되었습니다. 이 전시물은 말을 탈 때 사용되는 발걸이인데요 표면에는 용이나 기린, 천마로 추정되는 서수가 상감기법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통일신라 시대의 기마문화와 공예술을 여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위에 고리 부분으로 가죽끈을 걸 수 있게 되어 있고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발을 넣는 입구를 보면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되어 있는 데다가 발이 닿는 부분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혹시 직접 박물관에 방문해서 볼 수 있다면 정말 놀랍게 디자인된 구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2부에서 통일신라의 유물을 계속 소개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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