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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투어 / 이스라엘 박물관 - 무슬림과 십자군의 성지편 1부

by 톡톡오늘 2022. 5. 1.

로마 제국이 서로마와 동로마로 나뉜 이후로 동로마 제국은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된 이후로도 700년이 넘게 존속하게 되었는데요 사실상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1453년 5월 29일에 오스만 제국과의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에서 수도가 함락되고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로마 제국은 멸망되었습니다. 이 제국의 전성기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절이었는데요 동로마 제국의 최대 전성기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이 당시부터 고대 로마 시절보다 비약적으로 기독교 문화가 발전하게 되는데요 정교회를 기반으로 한 동유럽 문화의 기반이 다져지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사용되는 키릴 문자가 키예프 루스로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동로마는 서유럽에 수도자 생활과 미술 양식 등과 관련해서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는데요 유럽에서의 역사적 전환점을 갖게 하는 제국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을 둘러싼 십자군 전쟁과 관련된 유물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벽에 걸려 있는 전시물은 기원 508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가자 지역에 있던 회당 모자이크가 보이는데요 히브리어 비문에 의해 다윗으로 식별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왕의 예복과 면류관을 쓰고 왕좌에 앉아 있으며 머리에는 후광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무릎에는 수금이 놓여 있고 그의 주위에는 그의 연주에 홀린 동물들인 암사자와 뱀과 사슴으로 보이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모자이크에서 나오는 다윗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로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음악의 아버지로서 그의 악기 다루는 놀라운 기술로 인해서 하프를 연주하면 숲의 동물들 뿐 아니라 나무들과 바위까지 그의 주위에 모여 귀를 기울인다는 내용이 있는데요 때로는 음악을 통해 상대를 복종시키고 원하는 바를 이루며 자신의 종교인 오르페우스교를 전파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오르페우스가 여성을 거부했기에 동성애와 연관을 짓기도 했는데요 다윗이 노래를 잘 부르는 인물이었기에 오르페우스와 연관을 짓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부조로 보입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기원 6세기경 이스라엘 북부 지역의 레 호프(Rehov) 지역에 있던 회당 입구의 모자이크 바닥의 일부였던 히브리어와 아람어 비문입니다. 이 비문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탈무드의 사본인데요 이스라엘 땅에서의 안식년과 십일조와 관련된 농업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비문은 토지의 경계를 정의하고 농산물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요 주로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북쪽의 벳 스안(Beth Shean)은 이 법에서 면제되는 것으로 나와있으며 이 도시가 레호프와 가깝기 때문에 정확한 경계를 확인할 수 있기도 합니다. 탈무드는 히브리어 성경을 보충하는 설명서인데요 중세에 이르러서는 많은 유대인들이 탈무드를 성경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 탈무드는 유대인들의 전통을 이해하고 성경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는 흥미로운 배경지식을 담고는 있지만 법이나 규정에 주로 과도하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그리스 철학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헤브론 남쪽 언덕의 수지야(Susiya) 지역에 있던 유대인 회당입니다. 이 회당은 수백 년 동안 존재했으며 많은 보수 공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스어로 베마(Bema)라 불리는 연설하는 단에는 3개의 아치형 벽으로 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모세오경(토라)을 두었고 나머지 두 곳에는 각각 촛대(메노라)를 놓았습니다. 또한 베마에는 촛대(메노라)와 여러 동식물들이 조각되어 있었으며 벽과 바닥에는 수많은 기증자의 비문이 있는데요 지역 사회에서 건물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을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전시된 기둥과 벽, 조각 장식 및 바닥은 모두 수지야(Susiya) 회당의 발굴에서 발견되었으며 회당에 장식되었던 사람과 동물의 형상은 기원 8세기에 이 지역이 이슬람 지배를 받으며 우상과 같은 비유적 예술 행위에 대해 금지할 때 파손되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기원 527-545년)를 기리고 건물의 연대를 표시한 그리스어 비문입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성지 건설에 대한 주요 지지자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그의 후원 아래 다양한 건설 계획이 세워졌는데요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마리아 테오토코스(하느님의 어머니) 즉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된 예루살렘의 토오토코스의 새로운 교회(New Church of the Theotokos)였습니다. 교회 단지에는 순례자를 위한 숙소와 병원, 수도원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 건물은 부분적으로 거대한 수조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 교회는 기원 543년에 완공되었지만 페르시아에 의해 614년 다시 파괴되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기원 576-578년 경에 만들어진 비잔틴 시대의 교회에 있던 모자이크 바닥인데요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예술적 표현 형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러한 바닥은 사람이 밟고 다니는 장소에 있었기에 신성하게 여기는 성화와 같은 그림들은 표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에 일반적으로 그리스-로마 예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생활의 장면을 담고 있는데요 이 모자이크에서는 동물들이 사냥을 하고 사냥당하는 모습과 상상 속의 동물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말을 탄 사냥꾼의 모습과 함께 ‘알렉산더의 행위’라는 그리스어 비문이 있는데 알렉산더 대왕을 표현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지금의 전시물은 기원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카이사레아 항구에 있는 건물의 내부에 있던 벽화입니다. 세 남자가 덤불과 나무 사이에 서서 숭배의 의미로 팔을 들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요 그들의 이름과 직함이 머리 위에 이니셜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장면은 단순하게 되어 있지만 그 의미는 불분명한데요 가장 일반적인 해석으로는 낙원에서의 주교나 성인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 남자 머리 주변에는 후광 효과가 있는데요 이런 표현 방법은 중세 종교 예술에서 예수, 마리아, 천사, 성인에게 주로 있습니다. 동양 종교에서도 불교나 힌두교의 성인들도 이러한 후광효과를 볼 수 있는데요 더 근원을 올라가면 앞서 영국 박물관이나 독일에 박물관 섬 편에서 소개되었듯이 메소포타미아 종교의 태양신 숭배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다음 2부에서 이스라엘 박물관의 마지막 편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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