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팔레스타인의 어원이 되는 블레셋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과 내내 앙숙과 같은 관계였는데요 사실 고대에 실제 살았던 블레셋 사람들과 지금의 팔레스타인 사람은 거의 다른 민족이라 볼 수 있습니다. 고대에 살았던 실제 블레셋 사람들은 이집트나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등과 같은 제국들에 의해서 와해되고 강제 이주되어 실제로는 명맥만 이어오고 있었는데요 로마 황제인 하드리아누스가 유대인들의 잦은 반란으로 인해 유대 속주(Judea)라는 명칭을 블레셋에서 가져온 팔레스티나(Palæstina)로 바꾸면서 지명 역시 그대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슬람을 믿는 아랍인들들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게 되면서 현재까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계속된 분쟁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박물관의 전시물을 둘러보시죠.
이번 이스라엘과 성경(Israel and the Bible) 주제의 전시관에서는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출현부터 유대 지역에 헬레니즘 사회의 출현 전인 1차 성전 시대 까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요 전시물들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보이는 사마리아의 도단 근처 언덕 꼭대기에 있던 황소 숭배의 중심지에서 발견된 청동 조각상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야외 공간에서 어떻게 숭배 행위가 이루어졌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유물입니다. 이 조각상이 발견된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전역에 퍼져서 살고 있었는데요 다른 발견물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입상의 특징은 가나안 사람들의 숭배 방식과 유사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황소 숭배는 이집트에서 유래하기도 하였는데요 특별히 표시된 살아 있는 아피스 수소가 멤피스에서 사육되었고 오시리스 신의 화신으로 숭배받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 수소를 프타 신과 연관 짓기도 했는데요 이 수소가 죽으면 공개 애도 행사를 거행하였고 미라로 만들어서 매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숭배 방식이 이스라엘에 그대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유물은 블레셋 종교에 대해 알려주고 있는데요 고대 블레셋 사람들의 신전 모형입니다. 그들이 주로 믿는 신들 가운데는 다곤(Dagon) 신이 있는데요 성서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는 신입니다. 다곤이라는 이름에 대해 많은 설이 있지만 히브리어로 다그(물고기)와 연관 짓기도 하고 다간(곡싯)과 연관 짓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무엘상 5:4에서는 머리와 양손의 손바닥이 끊어진 채 쓰러진 다곤에 대해 언급할 때 ‘단지 물고기 부분만(단지 다곤만) 남아 있었다’고 되어 있기도 합니다. 또한 블레셋 사람들의 신 가운데는 바알세붑(Baalzebub)이 있는데요 파리들의 주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알자불(군왕들의 주인)에서 비하해서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신이 파리를 산출하는 신이라 중동의 해충을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 블레셋 사람들과 관련된 유적이나 신전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아 수수께끼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지금 보이는 문은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었던 아합(Ahab) 왕 시대의 하솔(Hazor) 성 입구에 있던 이중 문의 오른쪽 부분입니다. 이 문은 블록을 쌓아서 만들어졌고 거대한 상인방을 지지하는 두 개의 조각들이 지지대로 되어 있는데요 솔로몬이 므깃도와 하솔에 건축한 성벽 바로 위쪽에 폭이 더 넓고 견고한 형태로 건축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시기에 아시리아군이 대형 공성퇴를 사용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합은 성서에 많은 기록이 남아있는 왕이기도 했는데요 북쪽 이스라엘에 전례 없는 이교 신앙을 들이고 잔인한 군주로서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조각들은 사마리아 궁전에 있던 왕실 건축물에 사용된 난간 조각입니다. 정교하게 조각된 상아 상감 세공을 보면 궁전의 화려함을 유추해 볼 수 있는데요 이스라엘 왕들 가운데 오므리, 아합, 예후 왕들의 시대에 속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아합은 또한 바알을 위한 신전과 자신과 페니키아인 아내 이세벨을 위한 궁전을 건축하였는데 매우 사치스러운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궁전 기단은 폭이 약 90미터에 길이가 180미터 정도였으며 궁전터에는 여러 상아 조각과 장식판들이 다량으로 발견되어서 열왕기상 22:39에 언급된 아합의 상아 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비석은 이스라엘의 고고학적 발굴물 가운데 기념비적인 것이기도 한데요 아람 왕 하사엘이 군사적 승리를 기념하는 비문의 일부입니다. 1993년에 고고학자인 아브라함 비란이 이끄는 조사 팀이 이스라엘 북부의 텔단에서 이 비석을 발견했는데 여기에는 ‘다윗의 집’이 언급되어 있는데요 비석 오른쪽 아랫부분엔 흰색으로 덧칠해져 있는 부분이 그 부분입니다. 이 독특한 아람어 비문에는 성서에서 알려주는 것 이외로 다윗 왕조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 들어 있는데요 유다 왕족인 아하시야를 죽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내용입니다. 비문의 내용을 보면 ‘… 자르고 … 내 아버지는 … 에서 싸웠을 때 … 올라갔고 내 아버지는 누워 … 그의 [조상들] 에게로 갔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은 이전에 내 아버지의 땅에 들어갔다. [그리고] 하닷이 나를 왕으로 삼았다. 하닷이 내 앞에 앞서 갔고 내가 내 왕국 일곱 … 내가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여호람을 죽이고 다윗의 집 여호람 왕의 아들 아하시야를 죽였다. 내가 [그들의 성읍들을 황폐시키고]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글은 성서 열왕기상의 기록과 모순이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고대 왕들이 자신의 업적을 부풀려 말하는 습관이 있었기에 그렇게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비석이 가져다주는 다른 큰 의미가 있는데 다윗이 단지 후세에 만들어진 부족 신화의 인물이 아닌 실존했던 인물임을 증명하는 구체적인 증거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석판은 예루살렘에서 발견된 유다 왕 웃시야(Uzziah)의 무덤 석판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기원 1세기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 석회암으로 된 석판에는 아람어로 ‘유다 왕 웃시야의 뼈가 이곳으로 운반되었다. 열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습니다. 성서에서는 웃시야가 죽었을 때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나병 환자였기에 왕릉에 묻힐 수 없었다고 알려주는데요 아마도 나병 때문에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 안에 안치된 것이 아니라 왕실 묘지에 인접한 들판에 장사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지 약 700여 년이 지난 후인 제2성전 시대에 예루살렘이 확장되면서 웃시야의 무덤 역시 넓혀진 도시 경계 밖으로 옮겨야만 했습니다.
이어지는 2부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유물들을 계속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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