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정보/- 장소

방구석 투어 / 이스라엘 박물관 - 이스라엘과 성경편 4부

by 톡톡오늘 2022. 4. 5.

고대 이스라엘의 이웃 국가들로서 암몬, 모압, 에돔이 있었는데요 이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먼 친척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세 나라는 모두 과거에 이스라엘에 적대 관계를 가지고 있다가 지금은 모두 역사 속에 자취를 감춘 국가들입니다.

암몬(Ammonites)은 아브라함의 동생인 롯의 두 딸 중 작은 딸에에게서 태어난 아들의 자손이 세운 국가입니다. 그들의 언어는 히브리어의 한 방언 혹은 변형이었다고 알려주는 것을 볼 때도 그러한데요 이들은 요르단 강 남단의 동쪽에 위치해 있었고 지금 요르단의 암만이라는 지역이 랍바라는 이름으로 암몬의 수도였습니다. 이들은 기원전 2세기까지 구별된 영토로 남아있었지만 기원전 1세기에 나바테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고 기원 3세기 무렵에는 아라비아 부족들에게 흡수되어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모압(Moabites)은 롯이 큰 딸을 통해 얻은 아들이 세운 국가인데요 이들은 사해 바다 서쪽부터 뚜렷하지 않은 동쪽 경계까지를 이루고 살았던 민족입니다. 하지만 모압은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미스터리 한 부분도 많은데요 그들의 수도 역시 길(Kir)이나 디본(Dibon), 알(Ar) 가운데 어디인지 뚜렷하지는 않습니다. 이들도 유목 민족으로부터 지속적인 압박과 노출로 인해서 사라지게 되었는데요 기원 6세기부터 인구가 크게 감소해서 8세기경부터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으로 변해버리게 됩니다.

에돔(Edomites)은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의 쌍둥이 형인 에서가 세운 국가입니다. 이들은 모압의 남쪽에서 아라비아 사막의 가장자리까지 뻗어서 살고 있었는데요 에돔의 서쪽 부분은 유다 영토의 남동쪽과 경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들도 기원전 4세기 무렵부터 나바테아인들로 인해서 삶의 터전에서 이주하게 되었고 유다 남부 지역으로 이주해 이두매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요한 히르카누스 1세가 기원전 130년과 120년 사이 어느 때인가 그들을 복속시키고 강제로 유대교를 받아들이게 하였는데요 점차 유대인에 흡수되어서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된 뒤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인근에 살던 이웃국가들의 유물들도 함께 살펴보시게 될텐데요 전시관을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보이는 베틀은 고대에서 주로 사용했던 베틀의 한 종류인 수직식 베틀입니다. 두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장 위에는 가로대가 놓여 있었고 가로대에 날실을 걸고 날실에 추를 달아서 날실이 팽팽해지게 했습니다. 베틀에는 날실이 보통 두 조로 나뉘어 있었는데요 씨실을 한쪽 방향으로 잡아당겨 날실을 가로지를 때는 한 조의 날실 위를 지나게 되고, 이어 반대 방향으로 가로질러 이동할 때는 그 조의 날실 아래를 지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여성들은 의복을 준비할 책임이 있었기에 이러한 베틀을 다루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염색과 봉제 기술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장난감은 아이들에게 중요했다. 이스라엘의 어느 지역을 발굴한 결과 아이들의 장난감이 대량으로 출토되었는데요 호루라기나 작은 도자기, 전차 같은 작은 발견물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반면 어른들은 보드 게임을 선호했는데 복수의 사용자가 표시된 보드판 위에서 경쟁했으며 20개 혹은 30개의 말이 가능한 한 빨리 끝에 도달하기 위한 경쟁을 하였습니다. 또한 이집트로부터 유행했던 함정을 피하는 방식의 게임과 고대 도시 우르에서 발견된 보드 게임과 비슷한 형태의 것들도 발견되어 다양한 형태의 게임을 즐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고대 페니키아의 공예품입니다. 페니키아 인은 동부 지중해 연안에 거주했습니다. 현대의 레바논에서 남쪽의 카르멜(갈멜) 산까지 영향력을 끼쳤으며 고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항해 문명을 세우고 지중해 전역에 걸쳐 무역 식민지를 세웠습니다. 이들은 스페인과 카르타고(현대의 튀니지) 지역까지 식민지를 건설하였습니다. 동시에 유명한 공예가이기도 했는데요 지금 보이는 전시물과 같이 석재나 유리, 금속, 상아와 같은 원자재를 사용해서 가공된 공예품을 시리아나 이집트, 아시리아 등으로 수출하였습니다. 페니키아는 자주색 염색업으로도 유명했는데요 로열 퍼플 혹은 티리언 퍼플이라 불리는 자주색 염료로 염색된 긴 옷은 최고가품으로 팔렸습니다. 이 옷은 뿔소라류 조개 한 개당 단 한 방울밖에 안 나오는 염료로 염색되었는데요 몇 미터의 천을 염색하기 위해 수천 개의 조개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의 왼편은 라바트 암몬(Rabbat Ammon)에서 1986년에 발견된 기원전 8-7세기 무렵의 암몬의 남성 신 조각상이며 오른편은 기원전 8세기 중반쯤에 기록되었을 모압 왕의 승리 비석입니다. 왼쪽의 석회암으로 조각된 남성 신의 머리에는 이집트 파라오가 썼던 왕관과 비슷한 왕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조각품은 아마도 이집트의 신 오시리스(Osiris)일 수도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고대 요르단 지역에서 이시스(Isis)와 오시리스(Osiris)에 대한 숭배는 매우 인기가 많았고 많은 숭배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비문은 모압의 승리와 관련된 내용이 있는데요 암몬에 대한 승리와 암몬 사람들을 포로 삼은 일, 그리고 건축활동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이 두 왕국은 이스라엘과 많은 충돌 관계에 있었는데요 결국 다윗 시대 이후로 이스라엘에 굴복하게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민족적인 자주성이 사라지고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에돔 사람들의 신전에서 사용되던 피규어들인데요 호르밧 키트밋(Horvat Qitmit)과 하체바(Hazeva)의 남쪽 지역에 있는 에돔 신전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신전의 피규어들은 종교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종교의식을 진행하는 단상에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피규어들은 에돔의 숭배자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들은 코스(Qos)라는 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느헤미야 7:55에 나오는 바르고스라는 이름이 에돔 신의 이름인 코스라는 이름이 포함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다양한 농기구들이 있었는데요 팔레스타인에서 출토된 고대의 농기구들은 이집트에서 사용되었던 농기구와 유사점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왼쪽의 쇠스랑은 넉가래질을 하는데 사용되었을 텐데요 몇 개의 휘어진 발이 있었습니다. 위에 곡괭이는 현대의 곡괭이와 비슷하게 생겼는데요 고대에는 철 곡괭이와 함께 청동 곡괭이도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써레나 괭이, 쟁기, 타작 썰매, 넉가래와 같은 다양한 농기구들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5부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용했던 여러 유물들을 계속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