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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 장소

방구석 투어 / 이스라엘 박물관 - 이스라엘과 성경편 7부

by 톡톡오늘 2022. 4. 8.

이스라엘이 위치한 지역은 지정학적으로 바다와 사막 사이에 펼쳐져 있는 지역이면서 특이한 기후로 인해 이웃 민족들과 잦은 분쟁을 겪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각각의 특징을 가진 작은 지역들로 나뉘어 있는데요 해안 평야지대와 구릉지대, 중앙 산맥 지대, 요르단 계곡 지대 트랜스요르단 지대 그리고 북쪽과 남쪽으로는 이스르엘 평야 지대와 네게브 광야 지대가 있습니다. 또한 강원도만한 작은 면적에 비해 기후는 매우 복잡하게 되어 있는데요 이스라엘이 열대성 기후와 온대성 기후의 교차 지점에 있고 지중해와 아라비아 사막 사이에 위치해 있기에 그러합니다. 연중 4월에서 10월 사이엔 덥고 건조한 긴 여름이 지속되다가 11월부터 3월까지는 온난하고 다습한 겨울이 진행됩니다. 요즘에는 한국도 이러한 날씨로 변해가는 것 같은데요 이스라엘은 여름과 겨울 두 계절로만 양분되는 지역입니다. 하지만 바닷가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여서 여름에는 32-37도까지 올라가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루 동안 눈이 쌓인 스키장이 있는 헤르몬 산에서 더운 기후인 사해 바다 지역까지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하루 동안 다양한 기후를 체험할 수 있는 놀라운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제 이스라엘과 성경 편 마지막 7부의 유물을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보이는 비문은 실로암 비문으로 알려진 유물의 사본이며 원본은 1880년에 발견된 이후로 당시 그 지역을 통치중이던 오스만 제국에 의해서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이 비문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아시리아의 포위 공격에 대비해서 히스기야 왕이 기혼 샘에서 예루살렘으로 물을 운반하기 위한 533미터 길이의 터널을 건설할 것을 명령하게 됩니다. 그리고 양쪽에서 터널을 뚫고 나가다가 서로 반대 방향에서 작업자들이 만난 순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이 비문이 만들어졌습니다. 비문의 내용을 대략 보면 ‘터널 … 이 내용은 터널에 대한 내용이다 … 암벽 양쪽에서 땅 파고 있다가 3큐빗(1.3m)쯤 남았을 때 … 사람의 목소리가 … 반대 방향에서 곡괭이 소리가 들리게 되었고, 상대방을 부르는 소리에 따라 뚫고 가운데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터널이 뚫렸을 때 동료를 얼싸안고 곡괭이를 서로 맞대었다. 물이 샘으로부터 저수지 쪽으로 흘렀는데 1,200큐빗(525m)이 되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비문을 터키로부터 돌려받기를 간절히 원해서 여러 차례 돌려줄 것을 요청했고 압박도 가했지만 거절당하고 지금은 이스라엘 박물관에 사본으로 제작되어 전시되고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부조는 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센나케리브(산헤립)의 궁전 부조를 복제한 전시물입니다. 아시리아의 센나케리브의 군대가 이스라엘의 라기스라는 도시를 포위 공격하고 점령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는데요 이 도시는 80000㎡(잠실주경기장 건축면적 : 58551㎡)의 크기의 높은 둔덕 위에 있었고 성벽과 감시탑도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저냉 당시 아시리아 군은 창을 이용해서 공격하는 근접 전투 병력과 궁수, 돌을 던지는 용병이 고용되었고 반면 유대인 군대는 대부분 민병대 성격의 군인들과 용병으로 이루어진 전문적인 군사 조직력이 떨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현재 라기스(Tel Lachish)가 있던 장소로 추정되는 유적지를 발굴하면서 라기스 정문 동쪽의 성벽으로 경사로를 건설해서 도시를 공격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지역을 발굴하면서 치열했던 당시 전투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인근에 있던 한 동굴 안에서는 약 1500개의 두개골과 라기스 성벽에 있던 경사로와 성벽 위에 있던 화살촉과 같은 종류의 화살촉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부조에서는 공성퇴(숫양)가 관찰되는데 성벽 위에서 던지는 돌이나 다른 투척 무기로부터 보호하는 보호막도 만들어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다음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부조는 유대인 포로들이 사로잡혀서 가축들과 전리품과 함께 유배지로 이동하는 장면인데요 이 포로들은 덩굴, 무화과나무, 올리브나무를 배경으로 한 바위투성이의 길을 행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시리아에 대한 반란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관리들은 더 가혹한 대우를 받고 있는데요 오른쪽 아랫부분에는 그 가운데 두 명이 산 채로 살해되는 장면도 보입니다.

오른편으로 계속 이어지는 부조를 보면 포로들이 센나케리브(산헤립)의 웅장한 왕좌 앞으로 끌려오고 있고 몇몇은 처형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의 아래쪽에는 전차도 보이고 있으며 경호하는 군인들이 주변에 배치되어 있는데요 왕의 얼굴 모습은 니네베가 멸망될 당시에 점령군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베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센나케리브(산헤립)는 라기스에 진을 치고 랍사크(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예루살렘의 히스기야에게 협박을 하게 됩니다. 랍사크의 아카드어 이름의 의미를 생각해 볼 때 아마도 ‘술잔 올리는 시종장’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요 고대 술잔 올리는 시종장이 높은 고위 관리였음을 생각해 보면 매우 신임하는 사람을 예루살렘으로 파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키르벳 베이트 레이(Khirbet Beit Lei)에서 발굴된 기원전 6세기 후반경의 히브리어 낙서 비문인데요 흥미로운 점은 히브리어로 야훼(YHWH:יהוה) 예루살렘(YRSHLM:ירשלם)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고대 비문이라는 점에서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 비문의 의미는 고고학자들마다 해석이 다르기는 하지만 ‘[나는] 당신의 하느님(하느님과 하나님 둘 다 같은 의미인 영어로 ‘God’이기에 무엇이 맞는지를 말하는 것은 무의미한 논쟁으로서 표준 발음인 하느님으로 적어놓았습니다) 여호와(야훼)이니 유다 도시들을 받아들일 것이다, 나는 예루살렘을 구속할 것이다’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비문은 아마도 고대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되면서 도망친 한 난민이 쓴 글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1인칭 시적 기준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으며 3인칭으로 번역하기도 했지만 중요한 점으로는 고대부터 사용된 야훼와 예루살렘이라는 단어에 더 주목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헬레니즘 문화가 들어오기 전 1차 성전시대까지의 팔레스타인 지역의 이스라엘 유물들을 살펴봤는데요 다음 편인 그리스인, 로마인 그리고 유대인 편에서 정치적으로 급변하는 유대 사회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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