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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투어 / 독일 베를린 박물관 섬 - 로마편 6부

by 톡톡오늘 2022. 3. 1.

로마의 헤어스타일과 패션은 끊임없이 변화했고 머리를 스타일링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었습니다. 의상과 마찬가지로 고대 사회에서도 특정인에게 국한된 헤어스타일이 몇몇 있었는데요 그 스타일이 매우 독특해서 오늘날 학자들이 로마 초상화나 예술의 연대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또한 머리 모양에 따라 흉상의 인물을 알아내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헤어스타일은 성별, 나이, 사회적 지위, 재산 및 직업과 같은 여러 요인들에 의해서 결정되었는데요 여성들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었고 지위와 역할을 나타내었습니다. 여성의 매력은 머리카락의 표현과 관련이 있었는데요 머리 스타일을 가꾸는데 바치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해야 했음에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분위기였습니다. 또한 헤어 스타일링은 교양 있고 우아한 여성의 여가 활동과도 같았는데요 지금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한 헤어스타일이 아닌 최대한 복잡하고 부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이 선호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야지만 자신이 머리를 스타일링할 여유가 있는 부유한 사람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했는데요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은 돈이나 문화가 없다고 여겨지는 야만인과 관련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머리를 장식하는 도구들도 여럿 있었는데요 여성의 겸손과 명예를 나타내는 베일을 쓰기도 했는데 결혼했으며 존경받고 있다는 여성의 표였으며 겸허함과 순결함의 표시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여성들은 대머리였든 아니든 가발을 사용했는데요 가발은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게르만족의 금발과 인도의 검은 머리카락이 높이 평가되었는데요 정복된 문명에서 온 머리카락이라면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심지어 금발의 가발은 전쟁의 전리품을 상징하기도 했으며 편리하게 머리에 고정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이제 로마 시대의 여성들도 일부 포함된 명사들을 계속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맞은편 붉은 기둥벽 앞에 있는 인물은 로마의 두 번째 황제인 티베리우스입니다. 그는 기원전 42년에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와 리비아 드루실라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티베리우스가 세 살이었을 때,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는 아이의 아버지인 티베리우스에게 압력을 가해서 아내와 이혼하게 하고 그 여자와 결혼하였습니다. 이후 아버지인 티베리우스가 죽은 뒤에는 아들 티베리우스와 그의 남동생인 드루수스가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는데 나중에 그의 어머니의 새 남편은 아우구스투스로 선포되어 황제가 되었습니다. 티베리우스는 성년기에 이른 뒤에 빕사니아 아그리피나와 결혼했지만 그 결혼 생활은 비교적 짧았는데요 옥타비아누스가 티베리우스에게 강요해서 아내와 이혼한 뒤 과부가 된 자기 딸 율리아와 결혼하게 했기에 그러합니다. 그는 아우구스투스가 선호했던 다른 모든 후계자들이 죽은 후에 티베리우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게 되는데요 황제가 된 티베리우스는 사치스러운 것에 돈을 낭비하지 못하게 하고 제국을 번영시키는데 자금을 아끼지 않았으며 자신을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 여겨 영예로운 호칭들도 모두 거절하였으며 황제 숭배도 아우구스투스에게만 하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의심도 몹시 많아서 사람들을 대할 때 위선적이었고 통치 기간 동안 살인도 많았으며 살해된 사람들 가운데는 이전의 친구였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또한 생애 마지막의 카프리 섬에 있던 별장에서 10년을 보내면서 남자 애인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보는 초상은 로마 제국의 제11대 황제인 도미티아누스입니다. 그는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이면서 티투스의 동생이었고 플라비우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이도 합니다. 그는 아들이 없는 11살 연상인 형 티투스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는데요 베스파시아누스가 죽은 뒤에 티투스가 누렸던 것과 똑같은 지위인 호민관의 권력과 일부 임페리움을 누리고 싶었지만 허락받지 못하였고 결국 형과 적대관계가 되었습니다. 이후 형의 죽음에도 어느 정도 관여한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황제가 된 뒤에도 잔인하고 허세를 부렸기에 평판도 좋지 않았으며 귀족들의 미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도미티아누스는 황제 우상화를 추진하였는데 그리스도인들이 황제 숭배에 동참하지 않자 탄압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93-96년까지 사상 유례없는 공포정치를 펼쳤는데요 그로 인해 근위대장과 아내 도미티아 롱기나의 음모로 살해당했습니다.

왼쪽에 남 녀 두 초상이 이어서 나오는데요 왼쪽의 어두운 색 흉상은 하드리아누스 초상이며 오른쪽의 흰색 대리석 두상은 그의 아내인 비비아 사비나의 초상입니다.

먼저 하드리아누스에 대해 조금 살펴보자면 그는 로마 제국의 제14대 황제였는데요 로마의 최전성기였던 팍스로마나(Pax romana) 시대의 세 번째 황제입니다. 그는 전쟁보다는 교양과 예술에 더 뛰어난 황제로 인식되는 황제인데요 그리스 문화에 심취해 있었고 양성애자였으며 성격도 까탈스러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제국을 순방하면서 통치 상태를 점검하고 공공 건축물들을 세웠으며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고 예루살렘을 지워버리기도 했고 군 개혁을 통해 긴축하고 성벽을 많이 세웠는데요 영국에는 켈트족을 경계하는 유명한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관료제와 속주 행정을 개편해서 민간과 군사 업무를 분리시키는 등 여러 치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행적인 성격으로도 유명한데요 사비나 황후 하고는 부부관계보다는 비즈니스 관계와 같이 지냈으며 양성애자로서 남색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내가 있는 가운데서도 안티노우스라는 남자 애인을 두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복잡한 관계 속에 아내와는 자녀가 없기도 했습니다. 볼에는 푸른 반점이 있어서 수염을 길렀는데 이러한 스타일이 당시 로마인들에게 유행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오른쪽의 여성은 비비아 사비나로 하드리아누스의 아내인데요 플로티나 황후의 요청에 따라 기원 100년에 하드리아누스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남은 조각상과 동전 도안에 나온 것으로 볼 때 오늘날을 기준으로도 상당한 미녀였는데 어릴 때부터 변덕스러운 성격의 하드리아누스를 잘 이해하는 성격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첫 번째 황후였던 아우구스투스의 아내 리비아 이후 어떤 황실 여성이 누렸던 것보다 더 많은 공적 명예를 쌓았는데요 정기적으로 발행된 주화에 얼굴이 새겨진 최초의 여성이기도 하였습니다. 사비나는 남편보다 먼저 사망하였는데요 호사가들은 하드리아누스가 아내를 홀대하고 구박해서 자살로 몰아넣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은 것으로도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드리아누스는 겉으로는 애처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요 실제 두 사람 사이에 자녀가 없기에 부부 관계가 어떠했는지는 이러한 사실들로 유추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보이는 인물은 하드리아누스의 동성애 애인인 안티노우스인데요 하드리아누스와 어떻게 만나서 연인 관계가 되었는지는 자세한 내용은 남아있지 않으며 그의 죽음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하드리아누스는 나일강에 빠져 악어에 끌려가 죽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를 우상화했지만 타살되었거나 자살했다는 의혹도 많이 있습니다. 하드리아누스는 안티노우스를 우상화하면서 많은 석상을 세웠는데요 어느 박물관을 가더라도 안티노우스 석상은 하나 정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세웠습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하드리아누스 옆에 세워두어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해 두었습니다.

안티노우스의 맞은편 클라우디우스 옆에 보면 여성 두 명이 보이는데요 왼쪽은 브루티아 크리스피나(Bruttia Crispina)이고 오른편은 파우스티나 더 엘더(Faustina the Elder)입니다. 둘 다 고대 로마에서 귀족 가문으로서 명사인데요 크리스피나는 저명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그녀의 남편인 코모두스가 황제가 된 후에는 황후인 아우구스타(Augusta)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시아버지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의하면 크리스피나는 섬세한 성격에 우아한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하였습니다. 오른편의 파우스티나 더 엘더는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의 황후이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고모였으며 이후에 황제가 될 루시우스 베루스의 양어머니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 단체를 도왔고 로마의 어린이들, 특히 소녀들의 교육을 후원하고 지원하는 일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녀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은 머리 뒤쪽이나 위쪽에서 땋은 머리를 뒤로 묶은 독특한 스타일인데요 로마에서 2-3대에 걸쳐 여성들이 피우스티나 스타일로 모방하기도 하였습니다.

고대 인물들에 알아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인데요 이어지는 7부에서 로마의 인물들을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 이집트편 1부

이번에 찾아볼 박물관은 많은 분들이 대영 박물관으로 알고 있는 영국 박물관입니다. 왜 대영 박물관이 아니라 영국 박물관이냐면 영국 현지에서도 이 박물관을 영국 박물관(The British Museum)으로 부르고 있기에 정확히 표현하자면 영국 박물관이라고 말하는게 맞을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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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 아시리아편 1부

이제 살펴보게 될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주변 지역을 가리키는데요 인류 고대 문명이 시작된 지역으로 오랜 기간 세계 역사의 중심이 되는 지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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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 바빌로니아편 1부

이제 영국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바빌로니아의 유물들을 하나씩 열어보면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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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 메디아-페르시아편 1부

이번 편에서는 메디아(Media)와 페르시아(Persian)가 함께 바빌로니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근동에서 약 200년간 전성기를 누린 아케메네스 제국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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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 그리스편 1부

사람들은 항상 무엇인가 변화를 원하고 어떠한 계기가 삶에서의 전환점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신념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요 어떠한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험을 하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 인해 전환점을 맞기도 하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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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 로마편 1부

지금 세계 초일류 강국으로 부상한 미국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많은데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군사 등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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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 이스라엘편 1부

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에는 이스라엘과 관련된 유물 역시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요 한 민족이나 국가의 문화유산은 그 나라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영국 내에서의 유대인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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