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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투어 / 독일 베를린 박물관 섬 - 로마편 5부

by 톡톡오늘 2022. 2. 28.

기준 연도를 적다 보면 기원전(BC)과 기원(AD)의 표시를 하게 되는데요 이러한 년대는 서양의 기독교 문화권에서 사용해 온 것으로 현재는 전 세계가 통용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원전의 BC는 Before Christ 즉 그리스도 탄생 이전이라는 의미이며 기원의 AD는 Anno Domini 즉 중세 라틴어로 주의 해라는 의미로 실제 After Christ와 같은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적인 의미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기 위해서 CE(Common Era)라는 공통 시대 혹은 BCE(Before Common Era)라는 공통 시대 이전이라는 말로 대체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예수가 실제로 태어난 날짜로 했다고는 하지만 실제 예수가 태어난 해부터 계산해 보면 이 계산이 잘못되었는데요 실제로는 기원전 2년에 출생했습니다. 하지만 2년의 차이를 고친다고 하면 전체 역사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기에 현재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법이 생길 당시에는 수학적으로 0년의 개념이 없었고 실제로도 그러한 개념이 맞지는 않기에 기원전 1년의 다음 해는 기원 1년으로 바로 넘어갔습니다. 또한 세기라는 개념인 센츄리(Century)는 라틴어로 100이라는 의미의 센텀(Centum)에서 유래했는데요 기원전 1세기는 100-1년이며 기원 1세기는 1-100년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21세기이니 2001-2100년까지이겠네요. 이제 년도에 대한 TMI는 이쯤 하고 로마 시대의 인물들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전시관에 들어오자 마자 왼쪽에 보이는 이 인물은 아우구스투스인데요 일반적인 아우구스투스의 모습과는 다르게 머리를 베일로 가리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고대 사제들의 가장 상징적인 모습으로 폰티팩스 막시무스(Ponrifex Maximus)라는 지위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고대 로마의 국가 사제단(Collegium Pontificum)의 최고 사제를 가리키며 이후 가톨릭의 교황을 일컫는 칭호가 됩니다. 이러한 지위는 주로 정치가들이 가지게 되었으며 기원전 73년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 지위에 올랐고 기원전 44년 카이사르 암살 후에는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가 선출되었으며 레피두스가 기원전 13년에 사망하면서 이 지위는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로서 겸직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로마 황제들은 정치에서의 권위뿐 아니라 종교에서도 최고의 지위를 가졌는데요 이후 기독교로 개종한 로마 황제들도 폰티팩스 막시무스를 겸직하다 기원 379년 그라티아누스가 직위를 포기하면서 끝나긴 하였지만 이후 가톨릭에서 지역 교회의 사제들을 이끄는 대사제, 즉 주교의 단어로 사용되었고 이후에는 주교들의 으뜸인 로마의 주교, 즉 교황이 이 지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15세기 르네상스 발흥으로 고대 로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교황의 공식 칭호 가운데 하나로 사용되었으며 현재의 교황청(Pontifical)의 어원이 됩니다.

아우구스투스의 왼편을 보면 남녀 두 인물이 보이는데요 왼쪽은 기원 1-50년경에 제작된 율리우스 카이사르 초상이며 오른쪽은 클레오파트라 7세의 초상이며 기원전 30년 8월 사망 후 100년 이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초상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의 초상을 보면 공화정 말기에 발행된 동전에 묘사된 이미지와 비슷하게 묘사되었는데요 공화주의자들의 초상의 특징과는 다르게 굳게 닫힌 입과 강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고개를 돌린 모습으로 독재자의 느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야윈 모습을 통한 금욕적인 모습과 위엄있는 모습으로 엄격하고 흔들리지 않는 태도가 있음을 보여주려고 하는데요 장군의 군복 차림이 아닌 공화국의 정치가로서 튜닉과 토가로 등장하였습니다. 이 초상은 사후에 제작되었을 텐데요 그의 후계자의 관점에서 황제로서 독재를 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이 동상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는 아직까지 논란이 있지만 아마도 이집트에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리스-로마의 초상화의 특징과 후기 이집트 초상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기 때문인데요 카이사르를 묘사한 작품 가운데 최고의 조각품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오른쪽의 클레오파트라 7세의 초상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요 두 사람의 전설적인 로맨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를 묘사한 모습을 보면 헬레니즘-그리스 왕권의 전형적인 상징인 왕관을 쓰고 있으며 그녀의 목덜미에는 롤빵 모양과 같은 독특한 멜론 헤어스타일로 묘사되어 있는데 다른 많은 조각이나 초상에 나온 묘사와 동일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프톨레마이오스 여왕이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스타일이기도 했는데요 기원전 46년과 44년에 로마를 방문한 이후로 로마 여성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은 헤어스타일이기도 합니다. 로마인들은 클레오파트라를 묘사할 때 주화에 나온 강인하고 남성적인 모습보다 더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특징을 나타냈는데요 아마도 내전을 끝내고 왕좌를 확보한 그녀의 통치가 남편 없이 불안한 모습이었던 것을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중앙 정면에 보이는 인물은 아우구스투스의 초상인데요 아우구스투스(Augustus)는 이름이 아닌 존엄자(August One)라는 칭호입니다. 아우구스투스의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인데요 이 칭호는 로마의 초대 황제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는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지 13년 후인 기원전 31년 9월에 로마 제국의 명실상부한 통치자로서 부상하지만 왕이나 독재관이라는 칭호는 사양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원전 27년 1월 16일에 원로원이 수여한 아우구스투스라는 특별한 칭호는 받아들이게 되는데요 그는 권력이 증대되면서 행정을 개혁하고, 군대를 재편성하고, 근위대를 설치하였고, 많은 신전을 세우며 보수하였습니다. 또한 일부 속주들을 총독으로 임명하고 사형을 집행하는 것 외에는, 지방 행정에는 거의 간섭을 하지 않았는데요 이러한 관용 정책으로 속주에서의 반란 역시 일으킬 만한 이유가 적게 되었습니다. 그는 장수하였기 때문에 후계자를 선택할 여지가 별로 없었는데요 그의 조카나 두 손자, 사위, 한 의붓아들이 모두 죽었고, 생존해 있던 손자인 포스투무스는 상속권을 박탈당하고 공식적으로 추방당하면서 의붓아들인 티베리우스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원 14년 8월 17일에 사망했는데 8월(August)을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게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왼편으로 몸을 돌리면 보이는 첫 번째 인물은 드루수스(Drusus)인데요 아우구스투스의 의붓아들이면서 로마의 정치가이자 군인이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아우구스투스의 아내 리비아가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와의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들인데요 그의 형은 장차 미래에 황제가 되는 티베리우스입니다. 이후 티베리우스 네로와 이혼한 리비아가 아우구스투스와 재혼하게 되면서 드루수스는 아우구스투스의 집에서 자랐고 그의 형과 마찬가지로 정치 및 군사적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는데요 게르마니아 지역에서의 전쟁을 수행하다가 후퇴하는 과정에서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위독하게 되었습니다. 티베리우스는 서둘러 이탈리아에서 게르마니아로 갔지만 드루수스는 죽게 되었고 저주받은 캠프라는 의미인 카스트라 스켈레라타라는 곳에서 동생의 시신을 로마로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후 드루수스의 유해는 아우구스투스의 영묘에 안치되고 드루수스가 받은 게르마니쿠스라는 칭호는 드루수스의 큰 아들이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드루수스 뒤에 있는 인물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입니다. 그는 세스티우스 갈루스 장군의 후임으로 임명되었는데요 유대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전쟁을 통솔하게 되었습니다. 미래의 세계 통치자가 유대로부터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유대 지역의 반란은 동방 전역으로 소요 사태가 확산될 우려가 있었습니다. 미신적인 성향이 강했던 베스파시아누스는 미래의 세계 통치자에 대한 예상을 적중시킬 인물은 바로 자신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아들 티투스와 함께 무려 6만 명이나 되는 군인을 끌고 왔는데요 티누스가 제15군단을 이끌고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프톨레마이스로 왔고 그곳에서 제5군단과 제10군단을 거느리고 있던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와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들 티투스와 함께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고 기원 68년에 예루살렘 성전의 포위 공격을 준비하던 중 전갈을 받았는데 그것은 네로가 축출되고 갈바가 권좌에 올랐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는 다시 로마로 돌아가게 되고 기원 70년 가을에 도착하여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뒤에 벽면에 있는 인물 가운데 오른쪽 두번째 초상은 로마의 제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입니다. 그는 티베리우스의 동생인 드루수스의 아들이며 칼리굴라의 삼촌인데요 기원 41년에 칼리굴라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습니다. 클라우디우스는 칼리굴라의 암살로 인한 혼란한 와중에 근위대로부터 추대되어 황제가 되었는데요 이러한 권력 다툼 속에서 그를 지지한 인물들 가운데는 헤롯 아그리파 1세가 있었고 클라우디우스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헤롯 아그리파 1세의 왕권을 확인해주며 유대와 사마리아를 그의 영토로 보태어 주었습니다. 또한 클라우디우스는 원로원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요 재위 제14년인 기원 54년에 그의 네 번째 아내가 그를 독버섯으로 독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네로가 황제가 됩니다.

다음 이어지는 인물들은 6부에서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 이집트편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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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 초일류 강국으로 부상한 미국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많은데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군사 등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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