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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투어 / 독일 베를린 박물관 섬 - 로마편 8부

by 톡톡오늘 2022. 3. 3.

로마의 군사 전술은 지금까지 영국의 샌드허스트 왕립 군사학교와 같은 육군사관학교에서 여전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로마인의 조직적인 군사 전술과 전략은 현대의 군사 전략보다도 앞서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케도니아의 고대 그리스인들은 전투를 하기 위해 직사각형의 팔랑스크로 배치하는 방식이었는데 로마인들은 이러한 방식을 한 차원 끌어올려서 모든 병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간결하고 짧은 목록을 포함한 장비와 훈련의 표준화였습니다. 기원전 107년에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개혁으로 군대를 상류층만의 군부대에서 모든 로마인의 사회적 발전과 부를 열망할 수 있는 전문 조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이러한 군대 구조에 대한 로마 군단병의 충성심과 신뢰는 엄청났는데요 명령에 잘 따를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또한 로마 군대는 적응력이 뛰어나서 눈앞의 새로운 도전에 빠르게 변화했습니다. 그들의 주요 세 가지 전술로는 테스투도 대형, 3열 대형, 쐐기 대형이 있습니다.

테스투도 거북이를 의미하는 라틴어로 스쿠타(Scuta)라 불리는 휘어진 타원형 방패를 통해 360도의 나무 벽을 형성하였습니다. 이러한 진형을 위해서 높이가 1미터가 너는 서로 맞물린 방패 뒤로 층을 쌓았는데요 전방위 보호가 필요하다면 측면과 후방에 있는 병사들도 거의 이 방패를 가지고 방벽을 형성하였습니다. 테스투도 전술로 행진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거북이와 같은 속도로 이동할 수 있었고 일반적으로 원거리 무기 발사체에 대항해서 대형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적의 방벽을 공성하기 위한 전문 기술자를 벽까지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역할도 할 수 있었습니다.

3열 대형은 로마인이 도입한 다른 전술인데요 군단의 연공서열을 통해 전투에서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가장 노련한 군인인 하스타티(Hastati)가 선두에 나섰고 그들 뒤에 프린키페스(Principes)와 마지막으로 전투의 베테랑인 트리아리(Triarii)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전체 앞에 벨리테스(Velites)라는 신병들이 앞에 서서 접근하는 적에게 창을 던지고 트리아리 뒤로 돌아갔습니다. 그 뒤로는 후퇴하지 않는 라인을 형성하였는데요 거기까지 밀려난다면 최후의 투쟁에 직면한다는 의미로 트리아리에 떨어졌다(Falling on the Triarii)는 일반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군단의 전투 대형은 1마일(1.6킬로) 안에서 3개의 라인이 번갈아 간격을 두고 나란히 늘어서 있지만 깨지지 않는 전선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연한 군단의 기동을 위해 더 많은 공간을 두고 전투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쐐기 대형은 그리스 알렉산더의 전술이기도 했는데요 날카로운 끝이 적의 대형을 파고드는데 뒤에 두터운 부분이 더욱 적의 대형을 분열시키게 됩니다. 마치 나무 쐐기가 통나무를 쪼개는 느낌과 비슷할 것 같은데요 이 쐐기 대형은 가장 약한 적에 대한 살상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깊은 대형을 만들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쐐기 대형은 공교롭게도 알렉산더가 세운 마케도니아 제국을 멸망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는데요 기원전 168년 피드나 전투에서 결정적인 전술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전술은 영국에서 기원 60년 혹은 61년에 있었던 부디카(Boudicca)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도 사용되었던 전술인데요 압도적인 수의 적군을 이길 수 있었고 당시 로마군의 전사자는 400명가량이었지만 반란군은 8만 가까이 전사하고 패배하였습니다.

오늘은 소개가 길었네요 이제 박물관을 옮겨 신 박물관(Neues Museum) 2층으로 가서 로마의 유물들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라인강의 보물(Treasures of the Rhine)이라는 주제의 201호부터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방 중앙에 보이는 이 청동상은 독일의 크산텐(Xanten)라는 도시에서 멀지 않은 루티겐(Luttigen)의 라인강에서 1858년 어부들이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에 비정상적으로 라인강이 낮아져서 크산텐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하여 ‘크산텐의 청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현재 오른쪽 팔뚝만 없는데요 도토리와 밀 이삭, 포도, 양귀비, 솔방울, 석류로 구성된 화환을 머리에 장식한 채 양손에 쟁반(Ferculum)을 들고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동상의 주인공은 로마 연회에서 동원된 하인의 모습인데요 로마의 귀족들은 기원전 1세기부터 이러한 하인 모습의 동상을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했는데 연회에서 음식이나 등불을 놓기도 하였습니다. 이 동상은 기원 1세기 중후반에 만들어졌으며 기원 70년 바타비아 반란이 일어난 동안 약탈당한 베테라 1세의 군단 요새에서 온 것으로 보는데요 전리품을 옮기기 위해 서두르다가 라인강에서 바지선이 가라앉으면서 현대에서야 발견된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보이는 석상은 기원 2세기에 제작되어진 로마 황제 석상의 몸통인데요 밀레투스(Miletus)에서 발견했습니다. 로마에서는 황제들의 초상을 만들 때 야전사령관들이 입는 군복을 입은 옷차림으로 주로 제작되었는데요 마치 오늘날로 보자면 대통령의 초상을 양복 정장이 아닌 군복을 입힌 것과 비슷한 느낌이겠네요. 이렇게 초상에 군복을 입히는 이유는 스스로를 위대한 승리자이자 세계의 정복자로서 황제의 힘과 로마의 전통적인 종교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군대 사령관(임페라토르)의 모습으로 흉부 착용자(Thoracatus : 로마 군대의 총사령관)로 나오는데요 황제의 흉갑에는 전쟁의 신인 마르스의 모습이 있거나 태양신 혹은 태양 전차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현재는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는 않지만 동상에는 채색이 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로마 황제 석상 오른편에는 2세기 트라야누스 황제를 기리는 로마 군단병을 묘사한 부조입니다. 로마의 군단병들은 45세 이하의 로마 시민들 가운데서 모집되었고 처음에는 주로 이탈리아 출신 입대자들로 이뤄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속주 지역들에서 더 많이 모집되었습니다. 군단병들이 새롭게 정복한 지역들로 이주하게 되면서 이들은 토착민들을 로마화 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로마 제국이 하나의 정체성으로 통합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들은 25년간 복무하였는데요 전쟁이 있을 때만 입대하던 초기 방식에서 교전의 임무에 더불어 제국의 많은 기반 시설들을 건설하고 속주 지역의 경찰 역할도 하였으며 수많은 공공 시설물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지막 5년은 가벼운 업무들이었으며 전역을 하게 되면 토지나 이에 상응하는 돈을 받았고 사회에서 중요한 인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은 팍스 로마나 기간 동안 일반적으로 1년에 225 데나리우스를 받았으며 도미티아누스 집권기에는 300 데나리우스까지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은 신병일 때 실제 무기가 아닌 무게가 두 배나 무거운 목검과 방패를 지급받아서 근력을 기르도록 하였으며 규율 훈련도 하루 두 차례 받았는데요 6개월간의 신병 훈련이 끝나면 각자의 군단으로 보내어지게 되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군생활 내내 엄격한 훈련을 받았고 끊임없이 제식 훈련과 완전 무장 행군을 하였으며 엄격한 규율 안에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전장에서의 두려움을 쫓아내기 위한 정신 훈련까지 받았으며 탈영뿐만 아니라 게으름과 나태함에 대해서도 사형을 선고받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아침과 저녁 두 번 식사를 하였는데요 밀을 정기적으로 배급받았고 곡물 외에 포도주나 식초, 채소, 소금, 염장 돼지고기, 치즈, 올리브유등을 배급받았습니다. 또한 위생 관리도 철저했는데요 병에 걸린 병사들은 격리되어 부대 전체로 감염성 질병의 전파를 줄였고 오물들을 하류 쪽으로 떠내려 보내는데 특히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또한 심각하고 영구적인 부상을 당한 군단병은 의병 제대되어 몇몇 세금과 공공 업무 등에서 면제되는 혜택이 있었습니다.

가장 왼쪽의 칼은 로마 보병이 쓰던 칼인 글라디우스(Gladius)인데요 모든 검을 의미하는 라틴어 명사입니다. 그리고 이 검의 정식 명칭은 스페인 검이라는 의미인 글라디우스 히스파니엔시스(Gladius Hispaniensis)입니다. 주로 적과 직접 맞붙어 싸울 때 찌르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칼의 길이는 약 50센티미터 정도 되는 크기였는데요 길이가 짧았던 이유로는 당시 사람들의 신체적 기술적 한계와 군사적 문제도 있었는데요 당시 기술로는 튼튼하고 긴 칼을 만들기 어렵기도 했고 체구도 작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로마 군대가 막강했던 한 가지 이유는 군인들이 칼을 쓰는 훈련을 매일 했기 때문인데요 왼손으로 방패를 들고 있는 상태로 오른쪽 허리에 차고 있는 칼을 오른손으로 뽑아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능숙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칼날에는 종종 소유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전투에 앞서서 자신의 칼을 잘 관리하는 일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오른편에 제식검(글라디우스)보다 좀 더 짧은 검이 보이는데요 이 검은 푸기오(Pugio)라는 양날의 보조 무기입니다. 비록 길이는 짧지만 날이 넓고 튼튼해서 전투용 보조 무기로 충분히 사용 가능했던 것인데요 권력의 상징으로 로마 황제들의 초상이나 동상에 한 손으로 들고 있는 모습이 자주 나옵니다. 푸기오는 화려함에 따라 지위 역시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고위 장교들이 사용하던 푸기오는 여러 보석이 박혀 있는 화려한 모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검(푸기오)은 일반 병사들이 사용하던 검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 오른편의 로마 병사의 투구는 갈레아(Galea)라고 불리는 투구인데요 로마의 이웃인 에트루리아인의 영향을 받아 비슷한 유형의 투구에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투구는 여러 유형으로 발전하게 되는데요 중장보병을 위한 4가지 유형의 투구와 30여 가지 다양한 유형의 투구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지금 보시는 오른쪽의 투구는 로마 군인을 떠올릴 때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인 제국 투구(Imperial Gallic helmet)입니다. 초기 로마 군인의 투구는 얼굴까지 보호하는 형태가 아닌 바가지 모양으로 머리만 보호하는 형태였다가 직업 군인이 등장하면서 제국 투구로 대체되었습니다. 이 투구는 목덜미 뒤로 경사져 있는 목 보호대가 있고 귀 윗부분으로 귀 보호대와 황동 장식되어 있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이후에 전형적인 1세기 중반의 군단 투구인 G형과 더 경사진 목보호대의 H형, 철 대신 구리 합금으로 만들어진 I형으로 나뉘게 됩니다. 그 밖에도 파생돼 Italic D, E, G, H 유형도 있습니다. 또한 장교들은 투구에 일반적으로 빨간색으로 된 깃털이나 말털로 만든 볏이 있었는데요 기병대, 포병, 의무병 이렇게 3대 중보병 병과가 통합된 군단병(레기오나리이:Legioarii)은 볏이 세로로 되어 있었고 80여 명으로 구성된 부대를 지휘하는 백인대장(센추리언:Centurion)은 볏이 가로로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왼쪽에 있는 투구는 볏이 세로로 되어 있었을 군단병의 투구로 보입니다.

오른쪽에는 흉갑을 연결해서 고정했을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악세사리들이 보이네요.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백인대장(Centurion) 흉갑에 착용한 팔레라(Phalera)라는 메달인데요 군사적으로 뛰어난 행동에 대한 훈장으로 수여받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금이나 은, 청동, 유리로 만들어졌으며 이 상은 부대의 지팡이에도 장착되었습니다. 이러한 메달에는 종교적, 군사적 의미의 상징의 부조가 새겨져 있었는데요 군사적으로 퍼레이드를 하는 동안 흉갑에 착용하였습니다. 이 상은 여러 번 수상할 수도 있었으며 군 복무를 하지 않을 때 입을 수 있는 군장식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훈장을 많이 받았다면 가슴에 주렁주렁 달고 행진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전시물은 1858년에 발견되었으며 소유자로 티투스 플라비우스 페스투스로 적혀 있습니다.

중앙 복도를 따라 가다 보면 오른쪽에 검투사(Gladiators) 부조와 투구가 보입니다. 그중 대중적인 검투사들을 소개하자면 그물과 삼지창으로 싸우는 레티아리우스(Retiarius), 칼과 방패를 사용하는 스쿠타리우스(Scutarius), 쌍검을 드는 디마카에루스(Dimachaerus) 등이 있습니다. 지금 보는 투구는 물고기 모양의 투구인 무르밀로(Murmillo)로 보이는데요 흉갑도 물고기 모양으로 사실 갑옷을 걸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글라디우스와 로마 군단병 스타일의 긴 방패로 무장하였는데요 무거운 투구와 방패를 사용해야 했기에 대부분 근육질의 검투사였습니다. 레티아리우스와 함께 가장 오래된 전통적인 병종 가운데 하나이며 레티아리우스와 대립하는 병종이었습니다. 이런 검투사들은 초창기에 포로나 노예를 훈련시켜서 죽고 죽이도록 했느데요 검투사들이 일으킨 스파르타쿠스 반란과 같은 것을 보면 비참한 삶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일반 시민이나 귀족들도 계약을 맺고 경기에 나가기도 했지만 시민권이 제공하는 권리를 포기하는 선언과 같은 것을 하고 나갔기에 자신이 죽는 것도 감수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동물과 싸우는 사람은 베스티아리(Bestiarii)라고 불렀는데요 이들은 검투사(Gladiators) 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는데 수입해온 흔치 않은 동물들과 싸웠습니다. 제국 각지로부터 온 카스피호랑이, 코뿔소, 시리아 코끼리, 아틀라스 불곰, 아시아 사자 같은 맹수들과 대결했는데요 베스티아리의 타입으로 종종 중범죄자를 사형집행의 일환으로 맹수와 죽을 때까지 싸우게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 수사자는 이런 식으로 200명 이상의 사람을 죽이기도 했으며 특히 그리스도인들을 이런 방식으로 처형하였습니다.

이제 마지막 9부에서 페르가몬 박물관으로 넘어가서 로마의 유물들을 마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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