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루브르 박물관이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소개하고 싶었지만 구글 스트리트 뷰의 접근 한계로 이스라엘 박물관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박물관에도 다른 박물관에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전시물들이 많이 있는데요 앞선 박물관들과 같이 고고학 동의 유물들을 중심으로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박물관(Israel Museum)은 예루살렘에 있는 예술 및 고고학 박물관입니다. 1965년 이스라엘의 가장 크고 중요한 문화 기관이자 세계 최고의 전시 박물관 가운데 하나로 설립되었는데요 예루살렘의 기밧 람(Givat Ram) 지역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여기 소장품에는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인 성지 고고학 컬렉션과 유대인의 예술과 생활뿐만 아니라 순수 예술의 광범위한 소장품들이 있으며 현대 이스라엘의 다양한 미술 컬렉션들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박물관에서 주로 살펴보게 될 전시물들은 제2성전 모형(Second Temple model)과 책의 성지(Shrine of the Book), 그리고 고고학 동(Archaeology Wing) 순서로 돌아보게 될 텐데요 다양한 유물들을 재밌게 찾아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박물관이다 보니 아무래도 성서의 내용과 관련을 안 지을 수가 없을 것 같은데요 관련이 있는 내용들과 연관을 지어서 자료들을 찾아보려 합니다. 가장 먼저 가보게 될 곳은 실제 크기를 1:50으로 축소한 제2성전 모형(Second Temple model)인데요 단지 성전의 모형뿐만 아니라 고대 예루살렘 도시의 모형을 모두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모형은 기원 70년에 로마에 의해서 파괴되기 전의 도시의 지형과 건축적인 특징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이제 전체 모형을 한 바퀴 둘러보겠습니다.
지금 보이는 예루살렘 모형은 지금의 모습과 완전히 다른 모습인데요 고고학적으로 조사한 결과를 근거로 도시의 주요 부분들 가운데 어느 정도 추정한 모습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사실 지금까지도 고고학적으로 새롭게 발굴되는 부분이 많이 있기에 기존의 학설을 완전히 뒤집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가능하면 최신 자료를 근거로 구석구석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루살렘을 전체적으로 보면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있어서 놀랍게도 전시에는 매우 불리한 장소였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하지만 삼면으로 가파르게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동쪽의 기드론 급류 골짜기와 남쪽과 서쪽의 힌놈의 골짜기가 도시를 둘러싸고 있어서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이 골짜기는 도시 지역을 동쪽 언덕과 서쪽 언덕 사이로 양분하고 있는데요 여러 세기의 시간이 흐르면서 이 골짜기는 상당 부분 메워져서 많이 평평해졌습니다. 남북으로 뻗은 중앙의 골짜기에 더해서 동서로도 작은 골짜기가 가로지르고 있었다는 증거도 있기에 고대에는 위치적으로 상당한 안정감을 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골짜기와 절벽은 도시의 방어 체계에 포함되어 있었는데요 북쪽 면에는 이러한 천연 방벽이 없기에 북쪽의 방벽을 특히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티투스가 이 도시를 공략할 때 북쪽 방향으로 진입하였는데요 연이어 방어되는 세 개의 성벽으로 고전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제 위에 전망대에서 아래로 내려와 제2성전을 조금 더 자세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의 위치는 예루살렘 동편(현재 예루살렘 구시가지 동편)의 올리브 산(Mount of Olives)의 위치에서 보이는 성전의 위치일텐데요 한때 경사면을 덮고 있던 올리브 나무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명명되었습니다. 올리브 산은 3천 년 넘게 유대인 묘지로도 사용되었으며 약 15만 개의 무덤이 있어서 유대인 전통 묘지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여기에 무덤을 사용하는 이유는 메시아가 오면 죽은 자의 부활이 이곳에서 시작된다는 유대인 전통(스가랴 14:4)에 근거해서 묻히기 원했는데요 출처가 불분명한 스가랴, 학개, 말라기와 같은 예언자들을 포함해서 압살롬의 무덤 역시 여기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제 성전에 대해 소개하자면 유다 지파의 스룹바벨에 의해 다소 수수하게 지어졌으며 이후 로마 제국의 지원을 받아 왕이 된 헤로데 1세(Herod the Great : 헤롯 대왕)에 의해서 증축된 성전입니다. 헤로데 1세는 기존 솔로몬의 성전보다 더 웅장한 성전을 짓기를 원했기에 기존 북쪽의 평평한 부분을 넓혀서, 높낮이의 차이가 있는 지역을 더 넓히고 남쪽으로는 대지를 32미터나 확장하였습니다. 이렇게 넓히기 위해 아치형 구조의 석조물을 만들고 두꺼운 옹벽을 쌓았는데요 이 옹벽의 높이는 50미터나 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헤로데는 유대인이 아닌 이두매(에돔) 사람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민감한 감정을 건드리거나 성전 봉사와 희생을 방해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요세푸스는 헤롯이 권한이 없는 일꾼들이 성전의 거룩한 지역에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유대인 제사장들을 석공과 목수로 훈련시키기까지 했다고 알려줍니다. 이처럼 성전을 증축하는데 많은 사람이 동원되어서 성전 서쪽 편에는 길이 500미터가량 되는 옹벽을 세우고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는 큰 돌을 쌓았는데 어떤 돌은 무게가 거의 400톤에 달했다고 합니다. 당대 어느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건축물을 세웠고 인공으로 바닥을 높여서 조성한 대지로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컸습니다.
제2성전 부분을 확대한 부분인데요 확대해서 보면 성전의 입구에 있는 동쪽면 축대 위에 있는 덮개가 있는 통로인 솔로몬의 주랑이 보입니다. 이 주랑은 헤로데가 재건한 것인데요 솔로몬의 성전 때부터 있었던 장소라는 의견이 보편적입니다. 이 위치와 관련해서 성서에서도 세 번이 언급됩니다.(요한복음 10:22-24; 사도행전 3:1-7, 11; 사도행전 5:12, 13) 성전의 남쪽면에 도합 162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네 줄로 있는 통로가 셋이나 있는 장소가 있는데요 이 장소의 기둥 둘레는 세 사람이 양팔을 다 뻗어야 닿을 수 있을 크기였고 높이도 다른 주랑의 기둥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이 장소에서는 예루살렘의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장소인데요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높이는 거의 9.9m에 너비는 35m 길이는 240m였고 중앙 홀은 높이가 거의 33m 정도였습니다. 이 주랑을 건설한 목적은 로마의 도시 기능과 관련이 있는데요 보통 주요 로마 도시에는 은행, 법원, 기타 상거래의 중심지가 되었던 대신전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활동의 중심지로서 이 부분을 건설하였고 여기에는 여러 상업 활동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성전에서 제물로 필요한 비둘기를 사고팔거나 금지된 형상이 새겨진 주화를 교환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요 성서에서도 마태복음 21장에서 비둘기 장수와 돈을 환전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장소로 추정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이 유적지 부근에서 다양한 건축 파편과 처마 장식, 부조 등 다양한 유물들이 발견되기도 했는데요 당대 화려했던 성전의 역사를 찾아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보이는 성전 뜰 북서쪽 모퉁이에 있는 장소는 안토니아 망대(Tower of Antonia)라 불리는 구조물입니다. 이 구조물은 요새화된 병영이었는데요 요세푸스에 의하면 500명 군인들의 숙소와 목욕탕, 막사, 뜰이 딸려 있었다고 합니다. 이 장소는 이전에 느헤미야가 언급했던(느헤미야 2:8) 성을 건축했던 부지였을 텐데요 헤로데가 이곳을 증축하면서 로마의 정치인이자 장군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안토니아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헤로데는 이 장소를 유대인 대제사장을 견제하고 통제하고 성전 지역의 활동을 단속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북쪽의 침입을 막기 위한 역할도 하였습니다. 이 요새는 약 22m 높이의 바위 언덕 위에 지어졌고 그 바위 위에 다시 18m 높이의 석벽과 네 모퉁이의 망대가 있었습니다. 이 망대들 중 세 개는 높이가 약 22m였고 나머지 망대 하나는 성전 지역 전체를 내려다보는 남동쪽 모퉁이로 높이가 약 31m였습니다. 이 정사각형 구조안에는 중앙에 뜰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예수에 대한 빌라도의 재판이 있었던 장소를 이 중앙 뜰이었을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망대는 성서에 여러 차례 나오는데 사도행전 21:30-40과 22:24에 나오며 여기에서는 바울이 요새의 계단에 서서 종교적 폭도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고 증거 한 것으로 보이며 그 후 심문을 받기 위해 병영 안으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이후 바울은 산헤드린과 격론을 벌인 후에 다시 이 장소로 돌아왔을 것으로 추정하며 그를 죽이려는 것에 대해 조카가 경고하려고 왔을 때도 이 장소로 왔을 것으로 보입니다. 안토니아 망대는 이후 기원 70년에 예루살렘 멸망과 함께 파괴되었습니다.
그 뒤로 두 세트의 문이 양쪽으로 나 있는데요 이 문을 훌다 문(Huldah Gates)로 부르는 문입니다. 이 문은 이중 혹은 삼중 아치로 되어 있었는데요 훌다라는 말의 어원은 히브리어로 두더지 혹은 쥐를 의미하는데 이 터널은 동물들이 사용하는 구멍이나 터널을 생각나게 하는 의미입니다. 또 다른 어원으로 성서에서 유다 왕 요시야 통치 기간에 있던 예루살렘의 여 예언자인 훌다(열왕기하 22:8-20)와 관련된 사건이 이 부근에서 있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훌다의 무덤을 문 입구에 만들어 놓은 것으로 추측하여 문 앞에 있는 작은 구조물이 보입니다. 이 지하로 이어지는 경사로를 통해서 성전 산으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것으로는 이중문처럼 보이지만 기록에서 제사장은 왼쪽(서쪽)의 삼중문(Triple Gate)으로 들어갔고 일반 백성은 오른쪽(동쪽)의 이중문(Double Gate)으로 들어갔는데요 주로 오르내리는 방향은 오른쪽 통로였지만 어떤 슬픈 일이 있던 사람들은 반대로 왼쪽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나왔습니다. 이 문에는 특별한 장식은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천장에는 인상적인 장식이 많았기에 통로를 통해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2부에서는 계속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부분 부분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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