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이나 지역의 연대를 측정하는 가장 많은 방법으로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Radiocarbon dating)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방법을 개발한 미국의 윌러드 리비는 1960년에 노벨 화학상을 타기도 하였습니다. 이 동위원소 연대측정법의 원리는 시료에 들어가 있는 탄소-14의 개수를 기계로 측정해서 연대를 알아내는데요 이 탄소-14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줄어드는 특성을 찾아내어 그 수치를 가지고 연대를 추정하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측정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요 바로 대기 중의 탄소-14의 개수가 언제나 일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인데 과거부터 있었던 엄청난 기후변동이나 태양흑점의 변화, 인류의 활동 등으로 인해서 대기 중의 탄소량이 교란되기 때문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단지 참고 사항으로만 여길 뿐 절대적인 기준이 되기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측정은 무려 3500년이나 빗나가기도 하고 심지어 이라크 북동부의 선사 시대 마을인 야르모에 대한 11회 측정에서는 6000년이나 차이가 나기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이 마을에 대한 다른 고고학적 증거로는 사람이 산 기간이 500년 이상 되지 않은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건이 하나 또 있었는데요 1980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존 아렌스라는 예술가가 고대 부시먼의 예술을 모방해서 돌을 캔버스로 사용해 미술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피터마리츠버그 시의 박물관장의 손에 들어갔는데 이 작품의 기원을 몰랐기에 옥스퍼드 대학교에 의뢰했고 방사성 연대측정을 통해서 1200년 된 그림으로 판정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서 고대에 있던 물건에 대한 기준 연도는 참고 사항으로만 여긴다면 좀 더 유물에 대한 시점과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제 고대 문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와 관련된 이스라엘 박물관의 유물을 살펴보는 것으로 고고학동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고학동에서만 7개의 주제로 다루어지게 될텐데요 문명의 새벽(The Dawn of Civilization)이라는 주제의 전시관을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예루살렘 박물관의 고고학동으로 가기 위해서는 로비에서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찾아볼 수 있는데요 고고학동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맞이하는 전시물은 블레셋(불레셋)인들의 무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전시물은 이후에도 소개가 추가로 있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보이는 석관은 가자 지구 남쪽 데이르 엘발라에서 공동묘지에서 출토된 50여 개의 도자기 석관의 일부입니다. 석관은 큰 그릇을 만드는 방식과 같은 물레를 돌리는 방식처럼 손으로 만들어졌으며 가마에서 구워졌습니다. 나일 삼각주 근처에서도 비슷한 묘지가 발견되었는데요 이러한 블레셋(불레셋) 무덤은 이집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관 뚜껑에는 사람의 얼굴, 가발, 팔, 손과 같은 미라의 모습을 묘사해 놓은 특징이 있습니다. 많은 얼굴에는 작은 수염이 있는데, 아마도 이집트의 죽음의 신인 오시리스의 수염을 상징하는 것 같으며 고인이 막 들어가려던 영역에 도착했음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보통 한 명 이상 되는 죽은 사람의 시신은 관 속에는 장례를 위한 선물들도 함께 놓여 있었는데요 고인이 부자라면 돌이나 청동으로 만든 정교한 보석과 그릇도 추가되었습니다.
블레셋(불레셋) 사람들의 무덤 관이 보이는 오른편에는 브엘세바(Tel Beer-sheba)에서 발굴된 제단인데요 이스라엘에서 처음으로 발굴된 뿔이 있는 제단입니다. 네 모퉁이에 뿔리 달린 제단은 성서에서도 자주 언급되었는데요 레위기 4:7, 18, 25이나 출애굽기 29:12, 30:2; 38:2 등 여러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75년까지 히브리 대학교의 아하로니 교수와 이가엘 야딘 교수 사이에 제단의 연대 측정을 놓고서 풀리지 않는 논쟁이 있었는데요 아하로니 교수는 브엘세바 제단이 히스기야가 했던 개혁의 일환으로 철거된 제단 중 하나라고 믿고 있었는데 열왕기하 18:22의 내용을 근거로 그렇게 주장하였습니다. 그 후 그 돌들은 기원전 8세기 성벽으로 재사용되었고 성벽은 이후에 다시 파괴되었는데 아마도 센나케리브(산헤립)의 유대 원정 기간 동안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반면 야딘 교수는 성벽이 아마도 바빌론이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파괴할 즈음에 함께 파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제 처음으로 보게 될 전시관의 주제는 이번 편의 주제이기도 한 문명의 새벽인데요 수렵과 채집을 하던 공동체 집단의 출현으로부터 최초의 마을과 족장의 시작부터 농업 혁명과 초기의 도구들, 최초의 조직화된 사냥의 증거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예술품들과 고대 직물 및 점토 그릇, 금속 제품, 구리 유물 등을 찾아보게 될 것입니다. 특히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사회, 경제, 일상 생활부터 종교의 발전까지 찾아보게 될 것입니다.
전시관에 들어가서 오른쪽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보려 하는데요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고대인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돌칼입니다. 이러한 도구를 사용하던 시대를 학자들은 석기 시대 즉 돌을 가공해서 사용하던 시대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구들이 사용되었던 시대를 유추하는 방법으로 암석을 분석해서 지층에 있는 상대적인 순서에 따라 사용되었던 같은 암석층을 식별하기도 하고 탄소 연대법과 고생물학 전문가들이 발견한 꽃가루와 포자 및 식물 종의 시기를 통해 유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간을 정하는데 있어서는 너무나 모호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가변적인 것은 사실이기에 아직까지도 이 도구들이 사용되었던 정확한 시대를 과학적으로 추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터기 남동부에서 쾨베클리 테페(Göbekli Tepe)라는 시대를 너무나 앞서간 유적지가 나오면서 고고학자들의 동공 지진이 있기도 했는데요 어디까지나 고대에 사용했던 도구 정도로만 바라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네안데르탈인의 무덤의 유골입니다. 최근까지도 사람들은 네안데르탈인의 뇌의 크기로 인해 진화의 과정에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이들은 신체적으로는 호모 사피엔스(현생 인류)보다 작았지만 힘은 더 강하였고 신생아들도 호모 사피엔스보다 훨씬 크고 튼튼한 흉곽을 지녔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과거와는 다르게 최근에는 네안데르탈인에 대해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분위기입니다. 2008년에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마인드지에서는 동물 종의 절대적이거나 상대적인 뇌 크기와 지능 사이에 상호 관계를 발견하지 못했고 아마도 인간의 언어를 관장하는 브로카 영역을 제외하고 뇌의 특정 부위의 크기나 존재 여부와 지능 사이의 관련성도 알아내지 못했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도 미국 체질 인류학 저널(American Jounal of Physical Anthropology)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이 실제로 인류였을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2011년 1월 초에는 이전에 모든 이론을 뒤집는 설이 다시 등장했는데요 호모 사피엔스(현생 인류)와 수명이 비슷했으며 심지어 2021년에는 호모 사피엔스와 혼혈이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고대에 만들어졌던 예술 작품인데요 아직 문자가 사용되지 않던 시기에는 사상과 생각 심지어 종교적 사상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거의 어느 나라에서나 오랜 옜날부터 자신의 생각을 예술로 표현하거나 자신의 생활과 일상 활동에 관한 기록을 남기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알려주는 고고학 자료입니다. 이러한 그림은 세계 여러 장소에서 발견되는데요 보통은 이주하는 주기와 사냥과 어업의 계절과 같은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탄생과 죽음과 같은 것들도 그렸을 텐데요 주로 몸에 그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2008년에 발견된 나투프(Natufian) 문화권에 있던 여성의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입니다. 이스라엘 북부의 힐라존 타흐팃(Hilazon Tachtit) 동굴의 의식용 구덩이에서 발견되었는데요 샤머니즘의 한 형태로서 보고 있습니다. 이 매장지에는 적어도 3마리의 오록스(소과)와 86마리의 거북이 유해가 포함되어 있는데요 모두 장례를 치르는 기간 동안 현장으로 가져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무덤에는 거북이 껍데기와 표범의 골반, 멧돼지 다리와 금독수리의 날개 끝, 돌담비의 두개골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덤에는 개인 장신구와 함께 다른 사람들도 함께 묻혀 있었는데요 아마도 이것은 이 여자가 특별한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시기부터 정체성을 이루며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생각해 보게 되는 유물입니다.
이어지는 2부를 통해서 공동체 생활에서 종교가 발전하게 되는 과정의 유물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정보 > - 장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구석 투어 / 이스라엘 박물관 - 문명의 새벽편 3부 (0) | 2022.03.24 |
---|---|
방구석 투어 / 이스라엘 박물관 - 문명의 새벽편 2부 (0) | 2022.03.23 |
방구석 투어 / 이스라엘 박물관 - 성서의 전당편 3부 (0) | 2022.03.19 |
방구석 투어 / 이스라엘 박물관 - 성서의 전당편 2부 (0) | 2022.03.18 |
방구석 투어 / 이스라엘 박물관 - 성서의 전당편 1부 (0) | 2022.03.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