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성경을 필사하는 서기관(소페림, 마소라)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을 통해서 계속 성서를 필사하였는데요 이들은 자신들이 필사하는 일을 수행하면서 실수하는 것을 매우 끔찍한 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극도로 꼼꼼해지면서 필사하는 단어들의 수뿐 아니라 글자들의 수까지 셀 정도가 되었습니다. 고대에는 히브리어 글자들이 자음들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종종 단 하나의 글자를 빼거나 더해도 한 단어가 다른 단어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글자에서 가장 작은 실수다 하더라도 그렇게 쓰인 두루마리들은 유대인 회당에서 사용하기가 부적합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잘라내고 오류가 없는 새로운 부분으로 대치하였습니다. 또한 뒤에서도 나오지만 기록하기 전에 각 단어를 소리 내어 읽었고 단 하나의 단어도 기억에 의존해서 기록하는 것을 심각한 죄로 간주했습니다. 이후 이러한 행동이 종교적으로 많은 변질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고상한 동기를 가지고서 그들이 한 일은 질적인 면에서는 최고의 수준으로 보입니다. 이제 그들이 기록했던 다른 성서 번역판을 포함해서 안쪽을 좀 더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보이는 두루마리는 창세기 외경이라 불리는 두루마리인데요 성서의 책들 외에도 제2성전 시대의 다른 많은 문학 작품들이 종교적인 이유와 기타 다른 이유로 읽는 것이 금지되어서 유대인들에 의해 보존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작품 중 많은 부분이 기독교인들에 의해 보존되었는데요 토빗서(Tobit)와 유다 성서(Judith)와 같은 외경은 그리스어로 된 70인역 성서 번역본과 이 번역본에 기초한 다른 언어로 보존되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가상의 저자들로 분류되어서 다양한 언어로 된 독립적인 저작물로 보존되었는데요. 유대 광야에 있던 이 종파의 사람들은 외경과 잘못된 비문들도 잘 보관하였는데요 사해 두루마리가 발견되기 전에는 토빗서, 유다 성서와 같은 일부 번역본은 알려졌지만 다른 외경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쿰란에서 창세기 외경, 기도문, 잠언의 다른 버전이 발견되었는데요 어떤 경우에는 같은 작품의 사본이 몇 개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점은 이 종파 사람들이 외경을 높이 평가했고 심지어 그중에 에녹 1서와 같은 일부 외경을 완전히 성서의 일부로 간주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계단 아래로 내려가서 다른 전시물들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계단 왼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지금 보이는 성서 번역판은 알레포 코덱스(Aleppo Codex)라는 번역판입니다. 이 번역판은 히브리어로 케테르(왕관)라는 의미도 있는데요 1943년 움베르토 카수토 교수가 알레포를 방문했을 때 복사된 필사본 끝에는 솔로몬 벤 부야(Solomon ben Buya’a)라는 이름의 성서 사본을 전문으로 필사하는 서기관이 썼고 아론 벤 아셀(Aaron ben Asher)이 교정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사본은 마소라(전통의 수호자들이라 불리는 히브리 서기관) 학자들이 만든 알레포 사본 가운데 현존하는 가장 정확한 사본으로 간주되는데요 쿰란에서 발견된 일부 성서 두루마리에 보존되어 있는 글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내용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알레포 코덱스에는 원래 480개에서 490개 사이의 낱장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295개만 남아 있는데 이 부분도 성서의 4분의 3의 내용입니다. 이 알렉포 코덱스를 누가 의뢰해서 제작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알레포 코덱스가 완성된 후에 이라크 바스라의 부유한 카라파 유대교인이 구입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후 예루살렘에 있는 카라파 유대인 회당에 이 성서를 기증하였고 11세기 후반에 1071년 셀주크와 1099년 십자군에 의해 해외로 밀반출되어 이집트에서 판매되게 되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중세 시대의 서기관들이 사용하던 것들인데요 이들은 바닥이나 침대에 앉아서 무릎 위에 판자를 놓고서 작업했는데요 다른 책에서 복사하거나 글자를 받아쓰면서 실수를 피하기 위해 단어를 쓰기 전부터 큰 소리로 발음하였습니다. 글자는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복사되었고 나중에는 첨필이나 깃펜을 잉크에 적셔서 종이에도 복사했습니다. 그 밖의 사용하던 장비로는 구멍을 뚫는 칼과 양피지를 자르는 가위, 필기구를 담는 케이스, 잉크병 등을 구비하고 있었습니다.
알레포에 있던 유대인 공동체는 그들의 삶에서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여러 의례용품들을 만들었는데요 지금 보이는 이 유물은 봉헌 비문이 새겨진 타원형 명판과 토라 케이스가 보입니다. 토라 신전 앞 커튼에도 이러한 명판이 붙어 있는데요 이 비문은 지역 사회 구성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알려주고 오랫동안 잊혔던 유대인 생활의 세부 사항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사적인 문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알레포 코덱스는 중세 시대에 만들어진 히브리어 성경 사본인데요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최근에 만들어진 사본으로 보입니다. 이 번역판은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티베리아스에서 10세기경에 만들어져 2015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유물입니다. 이 사본은 1375년 마이모니데스의 제자 중 한 사람에 의해서 시리아의 알레포로 옮겨졌다 해서 알레포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으며 시리아에서 500년간 명맥을 유지하였습니다. 하지만 1947년 12월 1일에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가 이스라엘 건국을 결의한 지 이틀 만에 아랍 국가에서 반유대 폭동이 일어났고 고대 알레포 회당도 표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알레포 코덱스가 훼손되고 불탔다는 소문이 났었는데요 잃어버린 것으로 여겨진 알레포 코덱스는 폭동이 진정되면서 유대인들이 숨겨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58년에 이스라엘에서는 대담한 비밀 작전을 통해서 이스라엘로 가져올 수 있었는데요 예루살렘에 도착한 코덱스는 여러 페이지가 누락되었기에 광범위한 복원이 필요했습니다. 코덱스에 붙은 테이프 조각을 제거하고 얼룩을 닦고 잉크가 분해되어 벗겨진 부분을 다시 복원하는 과정을 거쳤지만 그리 성공적으로 복원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번역판의 상징성으로 인해서 현재 박물관에서 대중들에게 공개되고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음편에서는 이스라엘 박물관 본관으로 넘어가서 다른 유물들을 더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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