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역사는 정말 오래되었는데요 지금은 점점 전자출판물이 종이로 책을 대체해 나가는 분위기 인듯합니다. 하지만 의외로 종이로 된 책의 역사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는데요 고대에 동양에서는 간독이라고 해서 대나무나 나무에 글씨를 쓰고 실로 엮은 ‘형태’ 혹은 ‘죽간’을 종이 대신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책은 부피도 크고 읽기 불편해서 사용하기가 어려웠는데요 이후 점차 종이 제조법이 퍼져나가면서 책이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서양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는데요 파피루스나 양피지로 만든 책은 비효율적이었고 부유층만이 사용하는 것이었는데요 15세기부터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점차 책이 다양하게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책들도 아주 작은 메모리 카드에 도서관에 있는 책이 몽땅 들어갈 정도로 기술이 많이 발전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종이로 된 책도 많은 장점이 있는데요 어린아이들이 학습할 때는 종이로 된 책이 훨씬 이해력이 높다는 연구가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실제로 책의 앞뒤로 확인하기 위해 빠르게 오갈 때는 종이책이 훨씬 더 장점이 있어 보입니다. 이제 가장 오래된 책 가운데 하나인 사해 두루마리의 모습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복도를 지나 중간에 짧은 계단이 있는 장소에는 양 옆에 항아리가 전시되어 있는데요 이 항아리는 사해 두루마리가 들어 있던 항아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1946년 11월에 무하마드 에드디브(에드디브는 늑대라는 별칭입니다)라는 베두인 목동인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는데요 이 목동은 잃은 동물을 찾기 위해 동굴 속에 돌을 던졌는데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 들어갔는데 거기에서 오래된 항아리에 들어있는, 면에 싸여 있던 양피지 두루마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두루마리들은 도굴꾼 인자 골동품 상인에게 가져갔는데요 나중에 이 문서중 하나는 시리아 정교회로 흘러들어갔고 나중에 이 두루마리에 대해 전해 듣게 된 고고학자 E.L. 수케닉(E. L. Sukenik)에 의해서 구매되고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항아리는 반대편에 있는 사해 두루마리가 보관되어 있던 다른 항아리입니다. 이 항아리를 입수한 수케닉에 의해서 미국 동방 연구소(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의 존 트레버 박사에 의해서 좀 더 조사가 되었고 이후 여러 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이 지역에서 발굴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해 두루마리가 있는 장소를 쿰란 주변과 11개의 동굴에서 찾아내게 되는데요 기원전 3세기와 1세기 사이의 800개의 두루마리들과 단편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성서를 비롯해서 유대교의 법과 쿰란에 살고 있는 분파의 공동체를 위한 구체적인 규칙들,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시와 기도에 대한 해석이 포함되어 있었고 성서 예언의 성취와 마지막 날에 관한 종말론적인 저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계단 위로 올라가서 홀 안으로 들어가면 가운데에 사해 두루마리가 보이는데요 기원전 1세기-기원 1세기에 기록된 이사야서의 사본 A 입니다. 이 사본은 1947년 쿰란에서 발견된 7개의 두루마리 가운데 하나인데요 그 가운데 가장 크고(734cm) 잘 보존된 두루마리로서 전체가 남아 있는 유일한 성서의 부분입니다. 54개의 열에는 66개의 장이 모두 포함되어 있고 현대에 와서 구분되는 장(이사야 1장, 2장과 같은)과 절과 같은 구분선은 없습니다. 이 두루마리는 가장 오래된 사해 두루마리 가운데 하나인데요 기원전 100년경에 작성되었고 쿰란에서 발견되기 이전에 알려진 가장 오래된 성서 사본인 알레포 코덱스 등과 같은 마소라 학자들의 약 1000년 더 오래된 사본입니다. 현대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독자들까지도 즉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하게 기록된 이 본문은 중세 필사본의 어법과 철자법이 놀라울 정도로 똑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중세 필사본들 가운데 알레포 책자본(기원 930년경)과 레닌그라드 책자본(기원 1008년경)과 비교해 보았을 때도 틀린 내용이 거의 없다는 점은 놀라운 점인 것 같습니다.
이제 주변 둘레로 시계 방향으로 돌아볼 계획인데요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쿰란에서 사용했던 글쓰는 도구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글을 낭독하는 습관이 있었는데요 관행적으로 낭독하고 쓰고 암기하는 일을 함으로써 유대 공동체 간의 독특한 독서 문화의 습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글을 받아쓰는 일과 큰 소리로 낭독하는 일은 그들의 삶에서 중요한 일이었는데요 얼마나 정확하게 발음하고 암기하는지는 중요했기 때문에 단어의 의미를 얼마나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도 중요하였습니다. 쿰란에서 발견된 여러 문서들과 이러한 유물들을 통해서 그들은 이러한 일에 매우 잘 훈련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전시물은 양피지에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서의 한 부분인데 일부는 아람어나 그리스어로 기록되었고 일부는 파피루스에 기록된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양피지에 기록되었습니다. 이러한 성서 사본의 경우 같은 내용으로 여러개의 사본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에스라’서와 같은 어떤 경우에는 단 한 권만 발견된 것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서는 사마리아 오경 혹은 70인역으로 알려진 그리스어 번역판과도 내용이 유사한데요 현재 70인역으로는 출애굽기와 레위기가 남아있고 아람어 번역판으로는 레위기와 욥기가 남아 있습니다.
이어지는 3부에서는 쿰란에서 발견된 다른 것과 더불어 지하에 있는 전시물들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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