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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투어 / 이스라엘 박물관 - 예루살렘 모형편 4부

by 톡톡오늘 2022. 3. 14.

4부에서는 기원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공방전의 전쟁 상황에 맞춰서 상황이 벌어진 장소를 소개하려 합니다. 소개에 앞서서 배경을 먼저 말씀드리고자 하는데요 앞서 반란이 일어나게 된 경위는 제외하고 예루살렘 공방전과 관련해서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로마군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성벽은 3중 성벽이었고 요새 안의 도로들은 유격전을 하기에 최적화되어 있었으며 수많은 지하수와 지하 통로가 있어서 침입자에 대해 어느 방향으로든 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요새화 된 도시 내에는 약 2만 명 정도의 유대인 군이 주둔하고 있었지만 여러 파벌로 나뉜 민병대들이었기에 이러한 군대의 형태는 이후 패배의 원흉이 됩니다. 유대인의 주요 반란군 지도자는 시몬 바르 기오라(Simon bar Giora)와 기스칼라의 요한(John of Giscala)였습니다. 시몬은 약 2만여 명의 병력으로 기드론 골짜기 앞의 왕궁이 포함된 도시 서부 지역을 방어하고 있었고 요한은 엘레아자르 벤 시몬의 병력이 포함된 1만 명의 부대와 함께 성전 산을 포함해서 도시 동쪽 지역을 방어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기존 유대 지역에 있던 무기고를 탈취해서 생각보다 무장이 잘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시 주변에는 수많은 못이 있었기에 물은 그런대로 잘 공급되었지만 내전이 진행되면서 많은 곡물 저장소가 파괴되었고 유월절 축제에 맞춰서 예루살렘에 들어온 엄청난 인파(전체 유대 인구의 1/3)들로 인해서 음식은 많이 부족하였습니다.

반면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군은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의 4개 군단과 여러 보조 부대들이 합쳐진 7만명의 부대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군단의 구성원으로는 마케도니아 제5군단, 풀미나타 제15군단과 아폴리나리스 제15군단, 프렌테시스 제10군단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 군단에는 이 내용을 정리하면서 참고하는 유대 전쟁사를 집필한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역시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제 4월 14일에 티투스는 군단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되는데 도시 외곽 올리브산 인근에 캠프를 건설하면서 몇 차례 전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방어력이 과소평가되었음을 깨닫게 되고 유대인들이 도시 바깥으로 나와서 유격전을 진행하지 못하도록 도시 인근의 나무들을 베어냈으며 도랑을 메우고 바위 돌출부와 같은 부분을 모두 파괴하였습니다. 그리고 계곡이 가파른 동쪽은 공략이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서 캠프에는 제10군단을 남겨두고 제5군단과 제12군단, 제15군단은 세 번째 성벽이 있는 북쪽 방향을 돌아서 서쪽으로 전진하였습니다. 이제 로마군이 공략을 시작한 예루살렘의 성벽 부근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보이는 지역은 예루살렘의 세 번째 성벽 서쪽이며 오른쪽으로 가면 지금 자파 문(Jaffa Gate)이라 불리는 문의 위치가 나오는데요 이 문은 1, 2차 성전 시대에는 없던 문입니다. 자파 문은 이후 오스만 제국에 의해 세워진 문입니다. 대신 지금 보이는 것처럼 기원 70년 당시에는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로마군은 예루살렘 침공을 시작하면서 이 문의 왼편에 보이는 정면의 성벽을 따라 토벽을 쌓아서 경사로를 만들기 시작했는데요 유대 군의 밤낮 없는 격렬한 방어로 공사를 어느 정도 지연시킬 수 있었지만 로마군 3개 군단 역시 적지 않은 숫자였고 경사로를 쉽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로마는 세 개의 공성 탑을 세워서 함께 전진하였고 로마군의 화력 지원에 힘을 입어서 공성전 15일째 되는 날인 5월 초쯤에 세 번째 벽은 쉽게 돌파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문은 두 번째 성벽의 물고기 문 모습입니다. 로마군은 우선 세 번째 성벽 안에 많은 건물들을 허물고 도시 안에 새로운 군 캠프를 지었습니다. 이제 공성퇴로 이 중앙 문을 공격해서 4일 만에 성문에 균열을 만들어내고 군단병들은 편대를 이루어서 좁은 틈을 통해 전진하였는데요 이내 유대인들의 함정에 빠지게 되어 압박을 받게 됩니다. 그러다 로마 궁병 부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철수를 하고 다시 캠프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두 번째 성벽에서 공방의 4일째 되던 날 로마군은 다시 한번 공격을 감행하고 두 번째 성벽의 북쪽을 모두 허물게 되었고 유대인들은 첫 번째 성벽 안으로 모두 물러나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유대인들이 의도한 계획이기도 한데요 로마 군의 피해를 극대화하고 유대인의 피해는 줄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방어선의 표면적이 훨씬 작아졌기 때문에 저항할 수 있는 위치에 힘을 집중할 수 있었는데 유대인들은 더 수비에 병력을 집중하고 공격을 물리치고자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로마군과 일진일퇴를 벌인 안토니아 요새의 북쪽 부분인데요 이 시점에서 방어군의 전반적인 지휘는 북쪽을 따라 왕궁까지 첫 번째 성벽은 시몬 바르 기오라가 지키고 있었고 성전 산과 안토니아 요새로 이어지는 동쪽 가장자리는 기스칼라의 요한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또 다른 파벌 지도자인 엘레아자르 벤 시몬은 살해되었습니다. 시몬과 요한은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적대감을 드러냈는데요 로마군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고서야 다시 잠잠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제5군단과 제12군단은 안토니아 요새에서 두 번째 성벽과 첫 번째 성벽(안토니오 요새)이 만나는 지점을 따라 경사로를 건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7일간의 노력으로 두 개의 경사로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군이 경사로를 건설하는 동안 비밀리에 안토니아 요새 벽 아래로 땅굴을 뚫는 작업을 수행했는데요 이 땅굴 아래로 불을 내어서 터널을 무너뜨리고 로마군의 경사로를 무너뜨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너진 아래로 공성탑과 공성퇴 역시 함께 파괴되었고 양쪽에서 나온 전투원에 의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결국 로마군은 잠시 물러나게 됩니다. 이제 1년 중 가장 더운 계절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티투스는 떨어진 로마군의 사기를 회복하고 안정적으로 예루살렘을 공략하기 위해 놀라운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요 예루살렘 둘레로 다시 성벽을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티투스는 성벽을 빠르게 건설하기 위해 군단의 각 부대가 각자 맡은 성벽 가운데 가장 먼저 완성한 부대에게 영광을 주는 방식의 경쟁을 시켰고 이들은 전체 7.2킬로미터의 울타리 구조물을 무려 3일 만에 완성시키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로마군은 이로 인해 다시 사기가 회복되었고 이로 인해 예루살렘의 반군과 시민들이 몰래 밤에 성 밖을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는데요 붙잡힌 사람들은 귀중품을 삼키고 넘어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들의 배를 갈라 확인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때 예루살렘 내부는 상황이 더 악화되어서 애완동물부터 건초를 끓여먹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자녀를 잡아먹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티투스는 10주째에 모든 병력을 안토니아 요새에 집중하도록 명령하였고 본격적인 공격을 다시 시작하였는데요 첫날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이득 없이 그날 밤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지역에서의 격렬한 활동으로 인해서 요새의 구조적인 안정성에 타격을 주었고 로마의 경사로를 무너뜨린 땅굴이 무너지면서 안토니아 요새 북쪽면도 함께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유대 군은 무너진 성벽 사이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대치하게 되는데요 티투스는 특공대를 조직해서 공격했지만 실패하고 교착 상태에 다시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스스로 다시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밤늦게 바리케이드 안으로 조용히 들어가 나팔을 불었는데 놀란 양측은 좁은 구역에서 다시 10시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로마군이 후퇴하면서 첫 번째 전투가 끝나게 되었습니다. 다시 특공대를 투입해서 안토니아 요새를 공략했지만 두 번째 전투에서도 물러나게 되어 티투스는 공격 범위를 넓히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이제 여름 더위가 절정에 달하게 되었을 때 티투스는 지금 보이는 성전 벽 북서쪽 구역으로 4개의 경사로를 더 쌓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이에 대응해서 벽위에서 투척하면서 방해하거나 척후병들을 뒤로 돌아서 계속 보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군은 꾸준하게 경사로를 쌓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로마군도 피해가 커졌기에 사기가 많이 떨어져 가는 상황에서 티투스는 협상을 위해서 요세푸스를 유대인들에게 보냈지만 오히려 부상만 입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티투스는 다시 안토니아 요새 방향으로 진격해서 예루살렘의 심장부와 같은 성전 안뜰 북쪽(지금 보이는 신전의 오른편 지역)에서 서로 대치하며 공방을 벌였습니다. 마치 거대한 검투장에서 결투를 벌일 준비를 하듯이 양쪽에서 대치하던 중에 유대인들이 먼저 공격을 시작하였고 성전에서의 네 번째 전투를 계속 하면서 수비병을 신전 벽까지 몰아넣게 되었습니다. 요세푸스는 성전으로 로마군이 진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성전 입구에 불을 붙였다고 전하는데요 아수라장인 상황에서 한 로마 병사가 성전의 한 곳에 불붙은 막대기를 던졌는데 성전 안에 있는 목재와 천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걷잡을 수 없이 성전 안에 불이 타기 시작했고 불을 끄기 위한 유대인들과 성전 안의 수많은 기품들을 옮기는 사람들 가운데 로마군의 학살이 시작되었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성전 계단 아래로 피가 강물처럼 쏟아졌고 살해당한 자의 시체가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왔다고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내 성전의 동쪽에 있는 문도 뚫리게 되어 성전산은 로마군에 의해 통제되게 되는데요 요세푸스는 유대 전쟁사를 기록하면서 그 당시의 상황에서 티투스에 대한 비난을 피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는지 티투스는 성전 선에 대한 파괴를 막고자 했음을 시사하였습니다.

지금 보이는 곳은 유대인 군이 후퇴해서 마지막으로 자리잡은 헤로데 궁전 주변인데요 이 지역을 두고 양측은 다시 협상을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유대인 지휘관인 시몬과 요한은 예루살렘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있도록 요청하였지만 티투스는 성전산을 정복하면서 자신감을 얻고 무조건적인 항복을 요구하였습니다. 협상은 결렬되고 로마군은 시가전을 벌이면서 생존자들을 소탕해 나가기 시작했는데요 로마군은 도시 안쪽으로 진격하지 않고 다시 도시 바깥 서쪽 성벽을 통해서 경사로를 만들어 공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최후에 대해 예상한 유대인들은 저항을 어느 정도 포기하였고 남은 유대인들은 일부 숨겨진 터널과 수로를 통해 달아났지만 로마군의 순찰에 의해 발각된 유대인들은 모두 생포되거나 처형하였는데요 시몬과 요한 역시 함께 있던 다른 700명과 함께 생포되었고 로마에 압송되었습니다. 이 당시의 상황을 로마에 있는 티투스 개선문에 가면 부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몬은 이후 처형되고 요한은 종신형에 처했으며 97,000명이 노예로 끌려가게 됩니다. 헤로드 궁전은 9월 7일에 함락되고 8일에 예루살렘은 완전한 로마의 통제 아래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17세 이상의 남아 있는 모든 남성은 검투장으로 끌려가게 되었으며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 시장으로 끌려가게 되는데요 요세푸스는 110만 명 이상 죽었다고 기록하기도 하였지만 이 수치는 다소 부풀려져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추산으로도 25만 내지 50만 명이 예루살렘과 주변 여러 지역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하니 많은 유대인들이 죽었던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이로써 5개월에 걸친 포위 공격 끝에 예루살렘은 함락되었는데요 1세기 당시에도 이 사건은 매우 큰 사건이었으며 역사적으로 매우 처참했던 이러한 사건으로 유대인의 정치와 종교, 문화에 이르기까지 유례를 찾기 힘든 사건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이제 장소를 옮겨서 본관으로 넘어가기 전에 ‘성서의 전당’이라 불리는 전시관으로 가서 당시 유대교 종파중에 하나였던 에세네파의 본거지였던 쿰란 동굴의 사해 두루마리 유물과 성서와 관련된 몇몇 유물을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방구석 투어 / 독일 베를린 박물관 섬 - 이집트편 1부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의 중심에 흐르는 슈프레 강에 있는 섬의 북쪽 지역을 가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5개 박물관이 모두 모여 있는데요 이 지역을 박물관 섬(Museumsinsel)이라 부릅니다. 가장 오래된 구 박물관(Altes Museum)과 신 박물관(Neues Museum), 구 국립미술관(Alter Nationalgalerie), 보데 박물관(Bode Museum), 페르가몬 박물관(Pergamon museum)이 이 섬에 모두 모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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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투어 / 독일 베를린 박물관 섬 - 아시리아편 1부

이제 3부에 걸쳐 박물관 섬에 있는 아시리아인들의 유물에 대해 알아볼 텐데요 아시리아인들은 역사상 가장 호전적인 민족 가운데 하나였음 전쟁과 사냥을 즐기는 민족이었습니다. 고대 중동 사람들 사이에서도 잔인하기로 유명하였는데요 그들의 권력이 정점에 달했을 때의 아시리아의 영토는 이집트에서 페르시아만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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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투어 / 독일 베를린 박물관 섬 - 바빌로니아편 1부

고대 바빌론 도시와 성벽은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하는 장소이기도 하는데요 네부카드네자르 2세(Nebuchadnezzar II)의 목표는 바빌론을 그 어느 도시보다 크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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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투어 / 독일 베를린 박물관 섬 - 메디아-페르시아편 1부

아케메네스 제국(메디아-페르시아 제국)에서 여성의 지위는 어느 정도나 되었을까요? 다양한 민족과 지역이 포함되어 있던 제국이다 보니 그들이 속한 문화에 따라 그들의 지위도 달랐습니다. 여성에 대한 기록을 고고학적인 자료로 본다면 페르세폴리스에 있던 서판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왕실 여성부터 식량 배급을 받던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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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투어 / 독일 베를린 박물관 섬 - 그리스편 1부

예전에는 고대 그리스어를 희랍어(希臘語)라고 불렀는데요 헬라어 혹은 헬라스어를 한자로 말하다 보니 희랍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헬라스(Hellas)라는 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헬렌(Hellen)에서 기원했는데요 헬렌의 부모는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데우칼리온(Deucalion)과 퓌라(Pyrrha)의 자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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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투어 / 독일 베를린 박물관 섬 - 로마편 1부

로마 제국이 분열되고 멸망하면서 수많은 유럽의 국가들이 로마 제국을 계승했음을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뭔가 로마라는 타이틀이 유럽의 패권 국가라는 느낌을 주었던 거 같은데요 동로마의 경우에는 불가리아와 라틴제국, 세르비아, 오스만 제국, 러시아 등이 그렇게 주장을 하였고 서로마의 경우에는 동로마 제국, 프랑크 왕국, 신성 로마 제국 그리고 독일 제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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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 이집트편 1부

이번에 찾아볼 박물관은 많은 분들이 대영 박물관으로 알고 있는 영국 박물관입니다. 왜 대영 박물관이 아니라 영국 박물관이냐면 영국 현지에서도 이 박물관을 영국 박물관(The British Museum)으로 부르고 있기에 정확히 표현하자면 영국 박물관이라고 말하는게 맞을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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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 아시리아편 1부

이제 살펴보게 될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주변 지역을 가리키는데요 인류 고대 문명이 시작된 지역으로 오랜 기간 세계 역사의 중심이 되는 지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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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 바빌로니아편 1부

이제 영국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바빌로니아의 유물들을 하나씩 열어보면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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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 메디아-페르시아편 1부

이번 편에서는 메디아(Media)와 페르시아(Persian)가 함께 바빌로니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근동에서 약 200년간 전성기를 누린 아케메네스 제국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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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 그리스편 1부

사람들은 항상 무엇인가 변화를 원하고 어떠한 계기가 삶에서의 전환점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신념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요 어떠한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험을 하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 인해 전환점을 맞기도 하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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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 로마편 1부

지금 세계 초일류 강국으로 부상한 미국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많은데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군사 등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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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 - 이스라엘편 1부

영국 박물관(대영 박물관)에는 이스라엘과 관련된 유물 역시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요 한 민족이나 국가의 문화유산은 그 나라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영국 내에서의 유대인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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